과외 선생님 13부 (ㅇㅎ) -완결- [17]

14 와고 눈팅만7년 | 2022-05-24 16:44:34 | 조회 : 2320 | 추천 : +8


여행의 피로도 있고, 술도취하고, 섹스도 했겠다, 우리둘은 정신없이

골아떨어졌다,

산속에서의 아침은 처음이었는데, 새소리에 눈을 뜨다니 정말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더라, 선생님은 눈도 뜨지않은채 내몸에 딱 붙어서

“자기~일어났어~?”

“응,,,잘잤어? 보연이?”

“응,,,우리 커피마시자~커피가 엄청 땡긴다~”

마루끝에있는 공동 주방에서 물을 끓여 집에서 챙겨온 믹스커피를 한잔씩 타서

산공기 마시며, 커피한잔을 했다

그날도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하고 먹고, 마시고 했는데

일회용 필카로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내 사무실 서랍에 몇장남아있다.

아주 가끔 그날이 생각날땐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는데

나는 새카맣게 타서 등치가 산만하고, 선생님은 여리여리 하얀원피스에

백인처럼 하얀 피부에, 풍만한 젖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있는,,,그리운 모습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방학내내 선생님과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해 군대를 갔는데

“자기 건강히 잘다녀와 걱정말고”

“하,,,선생님,,,아니 보연이 두고 내가 어찌가냐....”

“에이~내가 남자 군대만 두 번 보내본 사람이야~걱정말고 잘 지낼테니 동규도 몸건강히

군복무 잘해“

사단 훈련소에 입소해서 짧은 이별의 순간만 보내고, 나는 입대를 했다

처음 백일휴가를 나오고, 선생님이 면회 올때면 외박나가서

거지같은 여인숙에서 아침까지 4-5번씩 섹스를 해도 선생님은

다 받아주셨다, 군대안에서 얼마나 쌓였겠냐며 오히려 위로하셨는데

“자긴 나없이 어떻게 해결했어? 나야 짬짬이 자위라도 했지만,,ㅋㅋ”

“나도 자위 할줄 알거든~자기 생각하면서 손으로 했지뭐,,,,자기 잦이가 그립긴했지만...”

“그래? 담엔 자위하는거 보여줘~~진짜 궁금한데~~”

“챙피해~”

그럭저럭 별탈없이 군생활을 마치니, 나도 24살이 되었다.

제대후 처음엔 카페알바, 편의점알바, 택배상하차 등등 힘든일 마다하지않고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집에는 독립하기로 선언하고 선생님 집에 들어와 살림을 차렸는데

집에서 5분거리니 부모님눈에 띄지않게 조심하는게 더 힘들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은 아직 과외를 하는 입장이라 다른데로 이사가기도 힘들어서

둘이 집에서 지낼때야 좋았지만, 집근처에선 따로 다닐수밖에 없었다

이모든 9년간의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아,,,당시로선 감당이 되지않을 일이라

도저히 얘길 할 수가없었다

선생님도 본인이 가르친 중2 제자를 키워서 잡아먹었다는 소리를 들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우리둘의 믿음이 확고해서

지금 이상태로 버틸때까지 버티자는 심정으로 지냈다

내가 25살이되어 작은 일본계 회사에 들어가 보통 직장인으로서,,,한 여자의 남자로

자리잡을 시기에 선생님은 35살 몸으로 임신을 했다

15살 때부터 그렇게 질내 사정을 수천번을 했것만, 단 한번도 임신이 되지않더니..

선생님도 나이가 들고 생리가 불규칙해졌는지, 지난달 배란일에 질외사정을 한단것이

안에 조금 샜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쨌든, 선생님은 처음으로 찾아온 아이 소식에 기뻐하셨고, 나도 내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어떻게든 보살펴여 한다는 책임감이 기쁘기보단

엄청난 부담과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임신초기엔 조심했지만, 병원에서 중기 이후부턴 섹스를 해도된다하길래

부드럽고 깊지않게 매일 안에 싸드렸다

워낙에 물봊이던 선생님은 임신을 하자 질 분비물이 늘어 오히려 섹스엔

최적화된 상태였다, 선생님도 배가 서서히 불러왔지만 아직은 성욕이 올라온다하며

매일같이 내 잦이를 물고 살았다

근데, 10년이란 세월을 같이 있다보니 내 공포와 걱정을 알아차리신거 같더라

“자기,,,,걱정돼?....”

“아니~무슨 걱정이야~여우같은 마누라에, 이제 토끼같은 자식도 태어날텐데~”

“피~난 알아,,,,우리가 동규 부모님에게도 말못할사이고, 나또한 우리 부모님한테

죄책감 드는건 사실이야,,,,우리 부모님이야 젊은 사위 맞이하면 좋아하시겠지만

자긴 아니지,,,,어머니랑 나랑 알고지낸 세월이 있는데

공부 가르치라고 보낸 아들하고 살고있는 나를 보시면 어떻겠어,,,게다가 임신까지...“

“어허~우리 애기한테 안좋아~그런 부정적인 생각하지말고 맘편히 있어”

난 그렇게 큰소리 떵떵 치긴했지만, 여전히 두려웠다

아이가 태어나면 호적은 올려야할텐데 아직 결혼식도 안올렸고

이런 우리 사이를 아는건 내 주위에 아무도없으니,,,하나부터 열까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곧 겨울이 다가오는 11월에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똘똘하게 생긴 사내아이였다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회복실에 누워있었는데

난 그때까지도 기쁨보단, 불안함이 더 컷던거 같다

사람이 참 간사한 동물이란게, 그렇게 10년의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작은 두려움의 불씨가 붙어버리니깐 그게 걷잡을수 없이 커져버렸다

아이 용품을 사고, 방을 꾸미며 그런 두려움을 하나씩 극보하기로 다짐을 했다

다행히 선생님도 백일까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정말 엄마로써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과외는 3달간 쉬기로 했고 백일간 우리둘은 매일 잠도 설쳐가며

아이에게 정성을 쏟앗다.

가끔 나도 젖을 빨아먹어 봤는데, 비릿하고 맹물같고 우리 애가 어떻게 먹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모유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근데,,,그 모든 것은 이미 끝나버린 스토리였다, 난 단지 모른척하고 열심히하면

다시 우리둘은 좋아질꺼라 믿엇던거다

100일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간다던 선생님

“집에 얼마만에 가는거지?”

“글세,,,한 2년만인거 같은데,,,일단 아이를 데리고 가면 어떻게든 되겟지,,,”

“자기야,,,내가 같이가서 일단 자기 부모님한테라도 인정받고 살자”

“아니,,일단 내가 먼저가서 설득하고 부모님맘이 편해지시면 그때 같이가자

2년만에 나타난 딸이 애기를 안고오면 울 엄마도 충격이실거야,,,,“

그녀는 그렇게 짐을 챙겨서 목동에있는 친정으로 갔다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이다

지금도 믿어지지않는 이별인데, 친정에 가서 몇통의 문자를 주고받은뒤

그녀는 잠적했고, 휴대폰도 해지해버려서 연락할길이 없었다

목동 어디인줄도 모르는 집을 퇴근하고 한3주간 돌아다녔는데, 혹시나

길에서라도 선생님을 만날수있을거 같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집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공허함과 허탈함에 며칠을 울었는데

선생님이 떠나간 한달쯤 집주인이 찾아와서 얘길하더라

전세 보증금은 절반 받아갔고, 절반은 나한테 반환해주면 된다고 미리 말을 했단다

선생님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아마 계획하고 있엇던거 같다

짐이라곤 티비랑, 냉장고, 옷가지 몇 개뿐 사실 살림살이도 별로 없긴했는데

언젠간 다시 돌아올거란 믿음에 그집에서 두달을 더 버티다 결국엔

나도 본가로 들어갔다

절반의 보증금은 2천만원 이었는데, 당시 내겐 상당히 큰돈이었고

선생님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에 그돈을 받아 몇 년간 한푼도 건들지않았다

집기류는 중고센터에 팔고, 선생님 옷이랑 속옷은 도저히 버릴수가 없어서

집에 아무도 모르게 꽁꽁사둔뒤 내가 지금 와이프랑 결혼할때쯤 버렸다

본가로 들어온뒤 한 몇 년간은 선생님 팬티랑 옷 냄새를 맡으며

자위하고 옆에 같이 누워있는 상상으로 겨우 버티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10년간의 비밀스런 관계는 그렇게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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