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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왕들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이유

원수 청담동백호 | 25-07-21 03:32:42 | 조회 : 55 | 추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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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신의 권위를 대리하는 존재로 표현되는 왕관 위로 '하늘의 빛'이 내리는 이미지


중세 유럽 왕들이 기독교를 열심히 수용한 데에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 바로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이었다. 왕권신수설이란, 쉽게 말해 “왕은 하느님이 직접 임명한 사람임” 이라는 개념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왕은 신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이고, 백성들은 그 권위를 인간이 아닌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자연히 왕에게 복종은 국룰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는 성경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로마서 13장 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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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성직자 조직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왕 입장에선 기독교를 신봉하는 것만으로도 “내 권력은 하늘이 줌”이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울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왕들이 이걸 잘도 써먹었다. 반란 일어나면? “저것들은 단순한 반역이 아니라 신에 대한 도전이다” 하고 정당성을 앞세워 억눌렀다.


그 당시 유럽은 글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지역마다 전통 신앙이나 부족 중심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이런 판에 기독교는 공통된 윤리와 도덕 기준을 깔아줬고, 지옥과 천국 같은 개념은 백성들 스스로 죄를 무서워하게 만들었다. 왕 입장에선 직접 통제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알아서 얌전히 굴게 되는 무형의 감시 시스템이 된 셈이다. 종교는 말 그대로 패시브 통제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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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왕이 교황으로부터 신을 대리하여 왕관을 받고 있다. 출처 :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과 교회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찰떡같이 붙어 다녔다. 왕은 기독교 덕에 신이 보증한 통치자 이미지를 얻고, 교회는 왕의 보호를 등에 업고 안정적으로 재산과 권력을 유지했다. 둘은 말이 좋아 협력이지, 사실상 서로를 살찌우는 공생 콜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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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 1세

역사 속 사례도 풍부하다.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1세는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로마 가톨릭의 공식 서포트를 받고 부족들을 하나로 모았고, 샤를마뉴 대제는 교황에게서 ‘로마 황제’ 칭호를 받아 정통성과 권위를 풀셋팅했다. 영국 왕들도 중세 내내 왕권신수설 들고 반란 진압하고, 의회의 견제 시도는 왕권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눌러 놓았다.


결국 중세 유럽에서 왕들의 기독교 수용은 그냥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왕권 강화, 통치 정당화, 사회 통제, 그리고 교회와의 전략적 협력이 다 섞인 종합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엔 언제나 왕권신수설이라는 버프 스킬이 깔려 있었다.


이 글은 역사적 사실과 일반적인 해석에 기반하였으나, 일부 내용은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팩트에 기반한 다양한, 상이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포/미스테리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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