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동안 중원의 주인이었던 한나라가 멸망하고, 엄청난 혼란기가 도래했다.
280년, 위나라를 계승한 진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천하는 다시 하나로 통일되었다.
하지만, 서진은 무능한 황제와 권신들의 횡포, 무엇보다 황족들 간의 내분으로 인해 빠르게 몰락했다.
30년 후, 영가의 난으로 인해 서진은 멸망하고, 황실과 잔존 세력들은 장강 이남으로 도망쳐 동진을 건국했다.
그 자리를 차지한 중원은 주인은 이제 북방의 이민족들이었다.
16국은 이들과 한족들의 국가를 포한함, 화북 지방에 위치한 수많은 나라들 중 주요 16국을 뜻한다.
이토록 수많은 나라들이 건국되고 멸망하는 최악의 혼란기였다.
당시 고구려와 충돌했던 중국 국가 중에서, 전연과 후연이 바로 이 시기의 국가다.
거짓말같이 비수대전에서 참패하면서 통일은 좌절되고 전진은 멸망한다.
탁발선비족이 세운 왕조로, 이들은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을 틈타 남쪽으로 내려와 국가를 세웠다.
남조의 경우 귀족의 권력이 막강했기에, 귀족들 간의 내전과 황실의 실정으로 인해 몹시 혼란스러웠다.

북위는 제7대 황제 효문제 시기부터 적극적인 한화(漢化) 정책을 추진했는데,
특이하게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는 이민족 왕조와 다르게
선비족의 성씨를 중국식으로 바꾸고, 수도를 낙양으로 천도하며 심지어 선비족의 언어까지 금지하는 등
중국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거부하는 선비족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고, 결국 육진의 난이 벌어진다.

육진은 북방 유목민족들을 방어하기 위해,
낙양 천도 이전의 원래 수도인 평성 부근에 설치한 도시를 말한다.
천도 전까지는, 수도 방어의 핵심인 관계로 늘 권력의 중심지였고,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낙양으로 천도한 이상 이들의 중요도는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후한 대접을 받았던 육진의 주둔군은 날이 갈수록 처우가 열악해졌고
여기에 한화(漢化) 정책에 대한 불만까지 쌓여, 언제든 반란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설상가상으로 당시 섭정인 효명제의 어머니인 영태후가 권세를 부리면서
불교에 심취해 국가의 재정을 거덜 내는 상황에 도달하자
육진의 세력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때, 반란 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 이주영으로
휘하에 고환, 우문태, 후경 등 걸출한 인물들을 거느렸던 장군이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육진의 난은 점점 진압되어 갔다.
이후 황제 효명제는 영태후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이주영의 도움을 받아 암살을 기도했지만,
이미 눈치챈 영태후는 한 발 앞서 효명제를 독살했다.
그다음 영태후는 효명제의 딸을 아들로 속여 황제로 삼았지만,
딸이라는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바로 다음날 황족 중에서 손자뻘인 원조를 황제로 추대했다.
% 효명제는 영태후의 친아들이다.

하지만 효명제의 밀서를 받은 이주영은 이 모든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고,
군사를 일으켜 효명제의 사촌동생, 원자유를 내세워 수도 낙양을 공격했다.
이후 영태후와 추대당한 원조는 황하강에 내던져졌고,
수많은 황족과 고관대작들은 모조리 처형당했다. 이를 하음의 변(河陰之變)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이주영의 세상이 시작되었다.

이후 이주영은 원자유 즉 효장제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
황제의 장인어른이 되면서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이주영은 육진의 난을 마저 평정하고, 양나라의 명장, 진경지가 이끄는 북벌을 성공적으로 격퇴시켜
그의 위상은 황제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황제를 손에 넣고 주무르며, 전횡을 펼치는 이주영이었지만 선은 넘지 않았는데,
이주영에 불만을 품은 효장제가
"그렇게 원하는 대로 할 거면 짐을 폐위하고, 당신이 직접 황제를 하라."라고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이주영은 황제를 해치지 않고, 물러서서 사죄하는 등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주영은 과거 후한의 동탁과 결이 다른 인물이었다.
% 양나라, 송나라의 뒤를 이은, 남조 왕조
하지만 효장제는 이주영의 전횡을 그저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결국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효장제는 이주영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임신을 이용했는데,
이주영에게 자신의 부인이자, 이주영의 딸인 이주황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외손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에 크게 기뻐한 이주영은 아무런 의심 없이 딸을 만나기 위해 자식들과 함께 황궁에 도착했으나
이때 효장제는 황궁의 문을 걸어 잠그고, 궐에서 이주영과 그의 자식들을 모조리 주살한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인물의 최후로는 너무나 허무한 최후였다.
효장제는 이주영만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을 사면하면, 그의 세력을 모조리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주영은 의외로 그를 따르는 세력과 인망이 많은 인물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주영이 암살당한 이후, 격분한 이주영의 조카, 이주조는 즉시 거병했고, 수도 낙양으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효장제의 처첩과 자식들을 때려죽이고, 낙양에서 엄청난 학살을 저질렀다.
효장제는 강제로 끌어내려진 다음 유폐되었고, 23세의 나이로 살해당하게 된다.
이주조는 다음 황제로 방계 황족 중 하나인, 원엽을 옹립했다.
하지만 방계 중에 방계인 원엽은 정통성이 부족했고, 이주세륭에 의해 폐위되고 만다.
이후 절민제 원공이 옹립되는 등, 계속 황제가 바뀌는 엄청난 혼란이 지속되었다.

이런 이주 씨 일족의 악행은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급기야 하북 각지의 여러 가문들이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과거 이주영의 휘하 장수였던 고환과 연계하여 원량을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여 함께 이주 씨에 대항했다.
이주조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고환에게 연이어 패배하고
수도 낙양마저 함락당하자, 이주조는 결국 자살하고, 이주 씨 일족들은 멸족된다.
낙양에 입성한 고환은 이주 씨 일족이 세웠던 황제들을 모조리 폐위시키고,
효무제 원수를 새롭게 황제로 옹립한다.

이제 권력은 고환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고환은 이주영이 그랬듯이, 황제를 손에 넣고 주무르며 전횡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효무제는 고환 몰래, 낙양을 탈출하여 장안으로 도망가 우문태에게 의탁했다.
분노한 고환은 새롭게 효정제 원선견을 옹립했고,
그 결과 북위는 고환의 동위와 우문태의 서위로 분열되었다.
동위의 국력은 서위보다 우세했기에 고환은 서위를 정벌해서 다시 북위를 통합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끌렸고 그동안 서위의 국력은 점점 강해졌다.
이후 동위는 서위를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지속적으로 보냈지만, 원정은 계속 실패했고
고환은 결국 북위를 다시 통합시키지 못한 채 눈을 감고 그의 아들 고징이 권력을 계승한다.

고징은 아버지 고환보다 한술 더 떴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물로, 고환이 살아있을 때 아버지의 첩과 정을 통한 데다가
고환 사후에도 또 첩과 정을 통한 골 때리는 인물이었다.
고징은 고환보다 더 황제를 업신여겼는데, 심복 최계서를 시켜 효정제의 모든 것을 감시하게 했다.
오죽 무시했으면 이런 일도 벌어졌다.
어느 날 효정제가 사냥을 나서 말을 타고 달렸는데, 황제의 수행원 중 하나가 말했다.
"천자께서는 말을 달리지 마십시오. 대장군이 성을 냅니다."
효정제는 말 타고 달리는 것조차 고징에게 허락받아야 했다.
황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순간, 일이 터졌다.

고징은 황제의 연회에 자주 참석하곤 했는데,
어느 날 고징은 시종이게 가장 큰 술잔을 가져오게 하더니 술을 가득 채우고는 효정제에게 넘겼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효정제는 화가 나서 한탄했다.
"옛날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는데 짐이 이렇게 살아 뭣하겠는가?"
이를 들은 고징은 절대 신하라곤 볼 수 없는 언행을 한다.
"짐? 짐? 개다리짐이냐?"
이후 고징은 최계서를 시켜 효정제를 주먹으로 3번 구타하게 한 후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고징은 최계서를 시켜 효정제에게 사죄했다.
효정제는 서럽고 분했지만, 고징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같이 사과하며 비단 100필을 주고 무마시켰다.

일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지만, 효정제는 머리 끝까지 분노하고 있었다.
이에 몰래 측근들과 모의하여 고징을 암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발각돼버렸고, 화가 난 고징은 병사들을 데리고 효정제에게 찾아가 따지기 시작했다.
"폐하께서는 어찌 뒤엎을 생각을 하십니까? 신 부자의 공로는 사직을 보존하게 하였는데
폐하에게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이는 반드시 좌우의 비빈 무리들이 한 짓일 것입니다."
고징이 호부인과 이빈을 죽이겠다고 일갈하자, 하도 어이가 없는 효정제는 정색하며 말했다.
"옛날부터 오로지 신하가 군주를 뒤엎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군주가 신하를 뒤엎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소,
왕이 스스로 뒤엎고자 하면서 어째서 나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오! 내가 왕을 살해하면 사직이 안정되고
살해하지 않으면 망해 없어지는 것이 며칠 없으니 내 몸도 아낄 겨를이 없는데 하물며 비와 빈의 경우에야!
반드시 시역 하고자 한다면 늦추든가, 빨리 하든가 하는 건 왕에게 달려 있소."
왕 = 고징. 당시 발해왕이었다.
고징이 생각해봐도 맞는 말이기에... 고징은 머리를 조아리고 크게 소리 내며 울면서 효정제에게 사죄했다.
하지만 3일 뒤 고징은 효정제를 유폐하고, 암살 시도에 관련된 모든 신하들을 죽였다.

고징의 위세는 어마어마했다.
황제를 폭행할 수 있으며, 무장한 채 겁박 할 수도있었다.
그러나 고징은 너무나 허무하게 죽게 된다.
고징은 음식을 나르는 노비인 난경을 구타하면서 욕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에 원한을 품은 난경은 쟁반 밑에 칼을 감추고 술을 마시던 고징에게 다가가 그를 살해했다.
고징이 제거되고, 드디어 숨통이 트이나 싶었던 효정제였지만..
고징의 동생인 고양이 권력을 빠르게 장악해 버렸고, 급기야 황제의 자리까지 넘보았다.
효정제는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 고양에게 선양을 하면서 동위는 멸망하고 북제가 건국된다.
하지만.. 효정제의 최후는 몹시 비참했다.
선양 이후, 효정제는 중산왕으로 책봉받았으나, 곧바로 고양에게 독살당하게 된다.
그의 시신은 황제의 예로 수도 북쪽에 매장되었으나
고양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 시체는 강에 던져진다.
함께 동위의 구 황족들도 모조리 학살당하면서 비참했던 원 씨 황족의 수난도 끝이 나게 된다.
북제는 서위의 뒤를 이은 북주에게 멸망당하고, 북주 또한 휘하 장수인, 양견에 의해 찬탈당해 멸망당한다.
이후 양견이 세운나라가 바로, 수나라다.
수나라는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며
후한 멸망 이후 수백 년 동안 펼쳐진 혼란기는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