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enable JavaScript in your browser to load website properly.

Click here if you'd like to learn how.

삘 받아서 소설 하나 써본다 [1]

이병 무진이 | 18-05-31 03:01:47 | 조회 : 901 | 추천 : +5


1525243438.png

 

 

 

 

 

눈을 감으면 항상 그 자리를 보고 있다.

 

어중간한 자리에 위치한 나

 

너는 딱 그 자리에서 약간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곳에 있었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렇지만 신경을 쓴다면 곧바로 알아차릴 정도로.

 

나는 남 모르게 시선만 옮기려 노력한다.

 

너는 그런 나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걸로 좋다. 나는 그저 그렇게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대로, 계속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너는 계속 나를 알아차릴 기미가 없다.

 

천천히 눈을 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조용하게 왼손을 오른손으로 쥐었다. 마음이 흔들린다.

 

몇 년이 흘렀을까, 그리 오래 지난 날은 아닌데, 그 날을 떠올리려면 머리를 몇 번 휘 저어야 했다.

 

나는 항상 그랬던 거 같다. 적당한 거리 그 위치에서 너의 등을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던거다.

그러다가 얼핏 보이는 웃는 옆모습이라도 보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던거다.

 

너의 모습만 바라보아도, 세상을 물들이는 색마저도 변하는 듯 느꼈던 거다.

 

홀로 곪아가던 나에게 너는, 마취제였다.

나는 그저 그대로만 있어도 좋다고 느꼈던걸까.

 

그렇게 흐르지 말라고 해도 시간은 흘렀고 우리도 변했다.

 

나는 그 적당한 거리감을 잊고, 뭐라도 된 듯 너에게 몇 걸음 더 다가갔고

 

그 몇 걸음보다 더 멀리로 너는 달아났다. 달아났다고 해야할까, 사실은 내가 가늠했던 거리보다 훨씬 더 멀리에 네가 있었다고 해야 맞겠지.

 

사실 어떻게 보면 그건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다. 너에게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갑자기 미안해졌다.

 

왼손을 쥐었던 오른손을 힘 없이 밑으로 떨구었다. 고개를 들었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아. 혼자 중얼거렸다.

 

충동적으로 졸업앨범을 찾았다. 너를 찾아 보았다.

 

내 사진이 어디있는지는 잘 모른다.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 펼쳐도 네 사진이 어디있는지는 금세 찾아낸다. 이것도 일종의 병은 아닐까.

 

너는 웃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 표정.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더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 웃음에 감동했다.

 

천천히 네가 있는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그 곳에 나는 당연히 없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는 그 속에 나도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너의 기억 속에 나는 이미 잊혀졌겠지만 내 학창시절은 너로 범벅이었다. 나는 그게 기쁘게 느껴졌다가도 다시 슬퍼졌다.

 

앨범을 닫고, 다시 책장 깊숙히 박아놓았다. 다시는 꺼내지 말자, 하지만 얼마 안 가 나는 다시 찾아볼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다시 이별했다.

안녕, 내 사랑.

SNS로 공유하기
< 1 2 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