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페터 한트케 [4]

17 수줍은질럿 | 2020-03-15 18:37:34 | 조회 : 380 | 추천 : -


1.

제목이 워낙 흥미를 끌어서 고르게 됨.

 

도대체 페널티킥할 때의 골키퍼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고름.

120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책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음.


사실 책을 처음 펼친 건 작년 11월이었는데

다른 해야 할 일들도 있고, 다른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고 해서

20페이지 정도 읽고 치워둠.

 

그러다 1월의 어느 날에 어떤 독서모임에서 어떤 분이

이 작가의 다른 책 <관객모독>을 읽어와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음.

다시 이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다 읽음.

 

 

 

2.

책 내용은 무지 난해함.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임.

한 번 다 읽고 나서 책의 맨뒷면을 펼쳐 책에 대한 설명을 보니

주인공이 누굴 죽였다고 나오는데, '읽으면서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음.

누군가를 목조른 적은 있는데 그게 사람을 죽일 정도였는지는 몰랐던 거임.

결국 소설을 한 번 다시 쭉 읽어보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찬찬히 볼 수 있었음.


내 독해력이 안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서술방식이 되게 난해함.

 

보통의 소설, 아니 보통의 글에서의 전개방식이

A-A-A-B-B-A-B-B

와 같은 식이라면

 

이 소설은

A-B-A-C-D-B-E

같은 식임. 굉장히 중구난방으로 서사가 진행됨.

 

각 문단들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연결되는 것이 아님.

첫 문단에선 이얘기를 했다가 다음번 문단에선 또 다른 얘기를 함.

심지어는, 가끔은 문장들 사이에도 연관성이 없어보이기도 함.

 

이런 서사방식은, 주인공 블로흐의 '불안'의 심리상태와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된 상황에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그 불안감이 블로흐의 행동과 말에서, 또 심지어는 소설 자체의 서사방식에서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


다음은 이 소설의 첫 문단임.

 

이전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꾼들이 모여있는,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꾼들이 모여있는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침 오전 새참을 먹고 있던 현장감독이 그를 흘끗 올려보는 순간 그는 그것을 해고 표시로 이해하고 공사장을 떠났다. 그는 길에서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옆으로 지나가는 차는 택시가 아니었다. 사실 블로흐가 택시를 부르려고 팔을 높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났다. 블로흐는 고개를 돌렸다. 택시 한 대가 뒤에 서더니, 그에게 빨리 타라고 했다. 블로흐는 몸을 돌려 차를 타고 나시마르크트*로 가자고 했다.

 

주인공인 블로흐는 오스트리아 사람임.

마지막에 나오는 나시마르크트*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지명이라고 함.

그러니까 주인공 블로흐는, 오스트리아 국적의 꽤 유명한 골키퍼였음.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는지, 아니면 오스트리아 자국리그에서 뛰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등장하는 우승컵의 개수로 봤을 때, 우승컵을 두 번 정도 들어올린 적이 있는 정도의 전직 골키퍼.

 

블로흐는 은퇴 후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마음 상태가 상당히 불안한 거임.

어느 정도 불안하냐하면 단지 일터에서 지각을 좀 했고, 작업반장이 그를 무심코 올려다 봤을 뿐인데도

블로흐는 그걸 해고의 의미로 지레짐작하고 공사장을 나올 정도로 불안함.

어떤 불화나 갈등이 있어서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안하고 작업장을 나옴.

 

그만큼 그의 행동은 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인데,

거리로 나와 팔을 높이 쳐들은 것도 그 충동적인 행동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거임.

그게 택시를 잡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면 그냥 갈 길을 가면 되는데

택시가 서자 그걸 또 타는 주인공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어딜 가자고 함.

 

 

3.

이런 식으로 소설의 내용이 진행됨.

중구난방 식으로 산만한 전개가 계속됨.

 

블로흐는, 더이상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있는 돈으로 생활하게 됨.

어느 날에는 여인숙에서 잤다가, 어느 날에는 호텔에서 자며

낮에는 카페에 갔다가 영화를 봤다가 함.

때로는 주변 사람들과의 싸움에 휘말려 주먹질을 하기도 함.

중요한 것은 이 블로흐의 모든 행동들이 충동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임.

 

어느 날, 영화관 매표소 여자직원과 자게 되고

그 다음 날, '당신은 일하러 안가요?'라는 여자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여자를 목졸라 살해하게 됨.

말도 안되게 충동적인 살인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블로흐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살아야겠다는 본능에 살인현장을 벗어나 국경에 접해있는 마을로 피신함.

 

블로흐는 국경마을에서, 지인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게 되는데

불안의 감정은 더 커져감. 점점 더 정신이 불안정하게 됨.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담긴 언어적인 의미에 대해 쓸데없이 고민하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들이 무슨 징후라도 되는 양 심각하게 받아들임.

온갖 망상에 빠지다가는 기존의 언어의 법칙을 파괴하기까지 함.

나도 이걸 설명하면서 뭔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음.


4.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블로흐는 돈이 다 떨어져가고, 일종의 체념의 상태에 이름.

아마 곧 있으면 체포될 것이고, 어떻게든 끝장이 날 것이라는 예감으로 살아감.

그렇다고 방구석에서 벌벌 떨면서 최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평소처럼 이곳 저곳을 배회하면서 지냄.

 

그러면서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데 옆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됨.

 

그는 판매업자에게 경기를 관람할 때, 공격하는 시점에서 처음부터 공격수는 쳐다보지 않고 그가 향하는 골문에 선 골키퍼를 주목해 본 적이 있는 지 물어보았다.

"공격수나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하고 블로흐는 말했다. "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는 사람들이 공 대신, 양 손을 허벅지에 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 뒤로 뛰어들어 왔다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편 수비수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골키퍼를 쳐다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골문을 향해 슈팅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골키퍼를 보게 되죠."

그들은 사이드라인을 따라 함께 걸어갔다. 블로흐는 선심이 그들 옆으로 뛰어가며 헐떡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골키퍼가 공도 없이, 그러나 공을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뛰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요."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판매업자는 더 이상 골키퍼를 바라볼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은연중에 공격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골키퍼를 쳐다보려면 사팔눈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말하자면, 누군가가 문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가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문손잡이를 보는 격이기 때문이다. 골치가 아파서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습관이 되어 있지만, 그러나 우스운 일이지요." 하고 블로흐는 말했다.

 

어디선가 이 책의 주제를 '현대인의 소외'라고 말한 것을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점에서는 정말 그런 것 같음.

블로흐는 축구계를 은퇴하고, 축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조립공 일을 하면서 '소외'를 겪고 있음.

단지 무엇이든 해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할 지도 알 수 없는 소위 '노가다' 일을 하고 있는 거임.

 

또 한편으로는, 축구에서 골키퍼라는 포지션 자체가 위의 설명대로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운 역할일 수 있음.

관중들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항상 집중하고 긴장하며 경기에 임해야 하는 것이 골키퍼의 모습임.

말하자면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소외'된 포지션이라는 거임.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관중들은 골문 뒤로 달려갔다.

"골키퍼는 저쪽 선수가 어느 쪽으로 찰 것인지 숙고하지요."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그가 키커를 잘 안다면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죠. 그러나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도 골키퍼의 생각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골키퍼는,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공이 오리라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러나 키커도 골키퍼와 똑같이 생각을 해서 원래 방향대로 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겠죠? 이어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블로흐는 모든 선수들이 차차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페널티킥을 찰 선수는 슛 지점에 공을 갖다 놓았다. 그런 다음 그도 뒷걸음질로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갔다.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 차게 됩니다."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키커가 맹렬히 달려왔다. 환한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골키퍼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페널티 키커는 그의 두 손을 향해 공을 찼다.

 

페널티킥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골키퍼의 선택에 달린 일이지만, 사실은 거의 운에 달린 일임.

공을 막으려는 모든 순간적인 노력은 가능하지만, 키커도 역시 똑같은 노력을 하기 때문에 헛된 노력일 뿐임.

좁혀오는 수사망 앞에 놓여있는 블로흐의 모습은 이 절망적인 골키퍼의 모습과 같음.

 

이런 맥락에서 블로흐의 '불안'도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 소외된 현대인들은 흡사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와 같다는 거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린 일이기는 하지만, 거의 헛된 의지라는 거다.

 

 

 

5.

위에 인용된 부분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이 남.

읽기가 어려웠어서 그런지, 혹은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서 그런진 몰라도 오래도록 기억할듯.

그전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서술방식도 흥미로웠음.

 

분량

★☆☆☆☆

난이도

★★★★★

재미

★★★★☆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페터 한트케.jpg

 

독서/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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