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웅거- 주체의 각성 독후감 3편

2 가람휘 | 2020-02-10 00:12:46 | 조회 : 95 | 추천 : +1


웅거는 인간이 맥락을 초월하는 존재로 거듭나려면, 미래를 예시하는 기획을 구체화하여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무제한적인 공상주의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동시에 인간의 상상력을 실제 세계로 꺼낼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를 위해 공정보다 공평함을 강조하였고, 모두가 최저 생계를 누릴 수 있게끔 하며, 교육 투자 증대 및 개방성 강화, 사회적 재산과 사적 재산의 공존이나 다양한 회사 형태와 재산법을 허용하여 실험을 촉진하는 연방주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결합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현행 재분배 정책으로는 부족하고, 상속, 증여세를 통해 보통사람들이 자산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재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웅거의 입장에서, 이러한 제안은 결과의 평등을 수단으로 추구하지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 제안은 평등이 아닌 위대함(보통 사람들의 권력과 경험의 향상, 인류 안에서 강력하고 특징적인 인성과 생활 형식의 확산)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결과의 평등은 그러한 위대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과의 평등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고에너지 민주주의를 방해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주체의 각성은 개인과 현상의 차이를 많이 경험하게 함으로써 발생합니다. 주체는 2번의 각성을 겪는데, 첫 번째 각성은 개별성, 타자성에 대한 긍정을 전제로 하며, 특정 시공간에 묶여있는 개인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각성을 통해 개인의 정신은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합니다. 두 번째 각성은 인간이 맥락 초월적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발현하여 미래에 더 위대한 인간이 되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낌으로써 발생합니다. 두 번째 각성은 제도를 혁신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사회 구조가 발전하는데 일조한다. 물론 이것이 발전인지는 시간을 통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은 개인의 생애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여러 세대에 걸친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웅거는 주체의 2번 각성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는 사람은 존중, 관용, 공정, 열광, 주의력, 개방성, 물욕 억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이기심을 억제하고, 차이를 차별하지 않으며, 차이를 새로운 가치로 포용합니다.

 

종합하면, 그는 인간의 도덕적 각성과 정치적 각성을 요구합니다. 도덕적으로는 부동심에 따른 사랑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아가페적 사랑을 지양하고, 상호감응성에 따른 사랑을 추구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이는 타자를 인정하고 타자의 거부와 상처 줌을 포용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개인적 분노에서 출발한 감성적 시도이나 개인적 분노로 끝나지 않으며, 사회 구조를 변혁하는 공리적 시도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다른 말로는 정의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천재지변, 금융위기, 전쟁 등의 위기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 구조를 혁신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 구조를 건설하려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이것이 국가적 차원인지, 지역적 차원인지, 도시적 차원인지, 전세계적 차원인지, 대륙적 차원인지에 대해서는 실험이 필요하며, 실험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결국 실험을 통해서만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상호 연관되어 있습니다. 위와 같은 개인의 각성을 위해 그는 지나친 불평등을 경계했고, 각성의 기회를 만인이 누릴 수 있게끔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그의 생각은 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비주류지만, 통일을 대비해야 할 수도 있으며, 동북아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앞장서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잠재적 미래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더불어 거의 모든 사회과학자가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위험함을 외치고 있는 현재에서 이 책은 함의하는 바가 많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비판하는 자가 많았으나(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이제는 학술적으로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비판하는 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예로 세습 중산층 사회로 다뤄지고 있고, 미국에서는 ‘meritocracy trap’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나은 미래를 예비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는 무엇일까요? 한편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과학자 사회에서는 지구온난화를 멈추는 것은 늦었고 이제는 지구온난화에 어떻게 적응할 지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웅거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지구온난화는 우리에게 블랙스완으로 다가올 지도 모릅니다. 고에너지 민주주의가 이에 대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이 책에 대한 요약은 이걸로 마무리 하고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책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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