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서평.txt [5]

15 구미베어 | 2021-03-30 11:56:58 | 조회 : 660 | 추천 : +2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가 1948년에 집필한 책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책을 집필하고 그해 6월 자신의 내연녀와 함께 강에 투신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생전 다자이 오사무는 심한 자기혐오에 쌓인 삶을 살았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인 오바 요조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인물로 나오는데  


평론가 들은 


아마 작가가 자전적인 내용을 이 소설에 녹여낸게 아닌가 하는 평가를 한다.


사실 오사무가 이 책을 출판 한지 얼마 안돼 자살을 해서, 그 진위를 파악 할 순 없지만, 


평론가들 대부분은 자전적인 내용을 녹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오바요조를 통해서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오사무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오사무는 요조라는 인물을 만들어서 자신에 대한 혐오스런 감정을 그 곳에 투영 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난 "인간실격" 집필 자체가 

오사무 나름이 자신에게 주는 위로였다고 말 하고싶다. 



책 제목


"인간실격"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인간의 자격을 잃었다. 박탈당했다" 이다. 


난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마주했을때  

'인간의 자격을 박탈 당했다.' 라는 것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걔 중 가장 큰 생각을 차지한것은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이다. 


철학적인 의미로 치환 하자면 

인간 다운 삶은 무엇인가? 라로 풀어 쓸 수 있다. 


인간 다운 삶.


내 생각의 깊이가 얇아 뭐라고 딱 정의내리긴 힘들지만 


내 기준에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도덕적인 삶을 살며,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게

인간 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 책의 오바요조는 어떤 삶을 살았고, 제목인 '인간 실격' 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 책의 시작은

 

한 남자가 오바요조의 인생 수기 책 사이에 꽂혀있는 3가지 사진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사진은 오바요조의 유년기, 학생기, 그리고 시기를 알 수 없는 사진 이었다. 


유년기 시절 사진의 오바요조는 

가족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연못 근처에서 보기 흉하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종종 입 발린 소리로 귀엽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아이였지만  

사실은 주름살 가득 한 익살스런 원숭이 같은 외모를 지녔다.  


어딘가 거북스러운 모습을 지닌 아이.



학생 시절 오바요조의 사진은 

유년기 시절 외모와는 정 반대로 

수려한 외모를 지녔지만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미소, 작위적인 미소를 띈 모습 이었고 

이 사진 역시 유년시절과 마찬가지로 거북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사진이었다.


 

마지막 사진은 백발 가득한 사람이 

불 옆에서 손을 쬐고 있는 모습인데, 어딘가 모르게 인상이 흐릿해서

사진을 보고나도 뒤 돌아서면 그 모습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그런 깨름찍한 사진이었다. 


이로써 사진 감상은 끝나고 

오바요조의 첫번째 수기가 시작된다. 


첫밴째 수기는


오바 요조 스스로가 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며 시작한다.


유년시절 요조의 기록이 담겨있는

첫번째 수기에는


요조의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 그려진다. 


단지 유희를 위해 육교를 만든 줄 알았는데

그게 도로를 건너기 위한 편리한 시설인걸 알고 실망하는 모습이라던지 


지하철을 단지 지하로 가는게 멋있어 보여서 그렇게 만든 줄 알았는데

사실, 교통의 혼잡을 피해 지하로 만든 걸 알고 실망한다던지


밋밋한 베겟닢이 더러움을 방지하기위한 

실용적인 물건이었다는것에 실망을 하는 모습을 고백한다.


요조는 "공복감" 이라는 단어에도 의문을 품는다.

 

 

자신은 공복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기도 하며

 

배고프지 않은데 가족들에게서 배고프지? 라며 소리를 듣거나. 

 

또 그 기대에 응하기 위해 음식을 억지로 먹는것에  

불만같은 의문이 있었고 굶지 않기 위해 일 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던 요조였다.


 

 

요조는 자신의 행복관념과 세상의 행복 관념의 괴리로 불안감에 떨었다.  


또한 부모의 화 나 사람들의 화에 극도의 공포가 있어서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말 잘듣는 아이로 가면을 쓴 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가면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익살스럽게 행동하는것이었고 

요조는 주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익살을 떨었다. 

단지 자신의 불안함과 공포감을 숨기기 위해 



앞서 말했듯이 첫번째 수기에 서사된 주된 감정은  

불안과 공포감이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유년기 시절의 요조는 

개복치 마냥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놀라서 발작 할 것 같았다. 



두번째 수기의 

학생시절 요조도 유년시절과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림학원에서 만나는 호리키라는 인물을 통해

술과 담배, 매춘, 좌익사상을 배우면서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다.  


요조는 호리키와 어울리며 잠시나마 사람에 대한 공포감을 잊는다. 


그 시기 매춘을 통해 여자 다루는 법을 알게 된 요조는

수려한 외모가 뒷받침 되어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요조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그 어떤 여성들에게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요조는 그녀들에게도 똑같은 공포를 느끼며 그 것을 숨기기 위한 익살은 여전했다.


그러다 우연히 술을 마시러 들린 한 카페에서 요조는 자신의 첫 여자인 쓰네코를 만나게 된다.

요조는 쓰네코의 우울함에 반해 이 여자와 몸을 섞고, 살게 된다. 


이전까지 만났던 

여자들은 자신과는 다른 괴리감에 공포를 느꼈고 그 떄문에 요조는 철저히 익살이란 가면을 쓰며 살았으며


다만 매춘을 하면서 만났던 여자들한테서는 맘껏 우울한 감정을 드러 낼수 있어서 편 했지만 

그녀들 또한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다소 작위적이지만) 불편하여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쓰네코는 오바요조에게 자신이 우울하다는걸 먼저 고백하는 모습에 요조는 놀랐고 

자신과의 묘한 동질감과 편안함에 그녀에게 매료된다. 


어느날 쓰네코는 요조에게 함께 자살을 하자고 권유한다.

거절이란걸 모르는 요조는 생각해보니 뭐 자살하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라고 느껴 

그녀와 함께 바다에 몸을 던진다. 


불행하게도 자살 소동으로 인해 쓰네코만 죽고 요조는 목숨을 건지게 된다. 

자살방조죄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요조는 기소 유예로 풀려나게 되며 

두번째 수기는 여기서 마무리된다. 



세번째 수기는 


구제불능으로 가족에게 찍힌 요조의 모습으로 시작 된다. 

아버지의 일을 봐 주었던 넙치라는 미술상인의 집에 얹혀 살면서 불편함을 느낀 

요조는 자신의 친구인 호리키의 집으로 도망친다. 


거기서 자신의 두번째 여자인 시즈코 를 만난다.

시즈코와 살면서 조금씩 경제적 여유가 생기게 되자 


요조는 다시 술, 담배, 매춘을 하게 되며 

그렇게 시즈코를 떠난다. 


 

그렇게 자신이 자주 들리던 카페의 마담에 집에 얹혀 살다가

우연히 담배가게 요시코의 앳된 순결함에 반해 결혼을 하게 된다.


잠시동안은 요시코와 행복 했으나 

요시코가 외간남자에게 겁탈을 당한 걸 본 요조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수 없음에 

또 다시 공포감이 밀려왔다. 


요조는 요시코가 몰래 숨겨놓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하지만 

또 실패로 돌아간다.


그렇게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고, 알콜 중독으로 괴로워 하는 나날을 보내던 요조는

객담을 하게 된다. 


객담 관련 약을 사러 갔다가 

집 근처 약사에게서 알콜 중독을 떨쳐낼 모르핀을 처방 받는다.


하지만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마약 중독에 빠지게 되며 

결국 요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수감되던날 요조는 말한다.


인간실격. 


그는 단지 그저 거절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미치광이가 돼 있었다.  


(무저항은 죄인가?)


정신병원에서 나오더라도 자신은 미치광이로 보겠지 하는 말을 남긴다. 




이 작품은 니힐리즘의 진한 향기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48년에 출판한 이 작품이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건 


2차대전 패배 직후  

실제로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휩싸여 있던 일본인들에게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개인의 개성을 드러 낼 수 없이 프레스기로 찍어내듯 교육했던 

군국주의 시절을 살아간 오바요조의 몰락과 


자신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 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1년의 지금 시점에서 바라볼땐

금수저가 자신의 인생을 던진거로 밖에 안보인다. 


무저항은 죄인가? 라는 말을 독자들에게 던진 요조.


실제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거역하지 않은것 때문에  

인생이 나락으로 갔다.


무저항은 죄인가 하는 말에 대한 내 대답은 그렇다 이다. 

 

영화 빠삐용엔 


빠삐용의 죄를 문책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판관은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는 빠삐용에게

 

"인생을 낭비한 죄" 를 묻는다. 

 

나는 요조가 무저항으로 자신의 인생을 방관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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