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크리스마스날.txt

15 구미베어 | 2021-04-06 14:27:27 | 조회 : 307 | 추천 : -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요즘 전화라고는 한통 먼저 하지 않는 베프의 이름이 휴대폰에 찍혔다.
 
 
뭔일이지? 갑자기 먼저 전화를 다하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모르는일.  뭔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자, 밤꽃향이 물씬 풍기는 굵은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렸다.
 
"뭐하냐 임마, 이새끼 카톡은 늦게 보면서 전화는 바로 받네?"
 
성격만큼이나 활기찬 베프의 목소리.
 
 

뜬금 없는 전화에 베프에게 한소리 했다.


"야, 너 곧 뒤질라나보다. 사람이 원래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데"
 
"뭐래 미친놈이, 너보단 오래 살꺼니까, 요즘 내가 니 뒤지거든 부조금 좀 할라고 적금도 들어놨어 어때? "

 

"미친놈" 


 
남자들 세계에서 통용되는 훈훈한 덕담이 서로에게 오고갔다.
 
2-3초간의 정적.  그러다 베프놈이 먼저 입을 떼었다.
 
 
"야 너 크리스마스때 뭐하냐?"
 
 
크리스마스때 뭐할꺼냐고...? 그 얘길 왜 나한테 묻는거지? 만나자는 얘긴가?
 
나는 이게 만나자는 얘긴가 싶어서 베프놈에게 말했다.
 
"왜? 만나자고? 내가 크리스마스때 왜 널 만나 씨불롬아ㅋㅋㅋ"
 
 
그러더니 특유의 꺽꺽 대는 웃음소리를 머금고 베프가 말했다. 
 
 
"또라이니? 내가 그날 왜 널 만나, 나 크리스마스 때 여자랑 있을건데?"
 
 
순간 가슴 깊이 숨어있던 배신감으로 둘러쌓인 불안감이 얼굴까지 훅 치고 올라왔다.
 
난 베프에게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을 확인 하려고 재차 물어봤다.
 
 
"너 그 여자가 혹시 예진이냐?"
 
 
"응 맞음. 오 눈치는 좀 빠르네?"
 
규모 9.0의 심한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너 예진이랑 잘 안됐다며?  걔가 너한테 관심 없는것 같다고 그랬잖아."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 그렇지만 전화기 너머로 까진 전달 되지 않는, 그런 떨림이었다.
 
 
내 상태야 어찌됐건 한껏 의기양양해진 베프가 말했다.
 
"아.... 첨엔 나랑 잡은 약속도 미루고, 재약속도 안 잡고 그래서 관심 없나보다 했지. 근데 나랑 친한 여자애가 그러더라, 걔 지금도 나 좋아한다고.
 
진짜 바빠가지고 약속도 따로 잡을 수 없었데. 되게 미안해 했다던데? 그래서 내가 어제 먼저 카톡했고, 얘기중에 크리스마스 이브날 한가하다해서 바로 약속잡았지 시발 나 솔로 탈출각이다. 응 그리고 넌 계속 솔로 하고."
 
 
"시발놈.... 축하한다. 섹스는 하지마라"
 
 
나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내듯 본심을 담은 외마디 문장이 튀어나왔다.
 
그래 섹스는 하지마라.... 제발
 
 
"야 진짜 지랄좀마 이새낀 진짜 여자친구 없는 이유가 있다니까 변태새끼ㅋㅋㅋ 여자가 무슨 섹스 대상이냐 좀 순수한 마음을 가져봐"
 
 
귀에서 웅웅거리는 베프의 목소리.
 
난 마치 적군에게 확인 사살을 당한 뒤, 바닥에 축 느러진 시체 마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이제 정말 혼자구나. 나란놈의 짝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하얗게 돼 버린 머릿속, 외로움이라는 발자국만이 홀로 깊게 새겨졌다.
 
 
"야 아무튼, 잘되면 언제 한번 예진이랑 보자. 내가 너 소개 시켜줄게."
 
"응 그래 고맙다 임마. 여튼 축하한다 임마"
 
솔직히 진심을 다해 축하 해 주진 못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길.
 
그날 따라 유난히 더 많은 여자들을 마주쳤다.
 
스쳐 지나가면서 그녀들이 뿜어내는 꽃향기들은 잠시나마 내 기분을 달래 주었지만
 
이내 신기루 처럼 사라져, 허무함 만이 가득했다.
 
나에게는 연속 될 수 없는것들.
 
 
그 꾳향기를 온전히 품을 날은 언제가 될까.
 
나도 침대 위에서 보드라운 살결을 느끼며, 사랑을 속삭이고 그녀들이 뿜어내는 꽃향기들을 킁킁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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