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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숭례문 망국론 말이지 [4]

하사 ㉿有道炭㈜™ | 08-05-02 18:38:34 | 조회 : 4481 | 추천 : +1


그거 사실 구라다.

-_-

왜냐고? 실록에서 정도전이 그런 말을 했다고 찾아볼 수가 없으니까.

( ...)

존나 미안하긴 한데... 사실 전부 다 낚인거야 ㅜㅜ
(도넛 지못미... 그렇지만 난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어)


- 낚시글의 원문 -

조선실록 선조 4서 에서는 임진왜란 보름전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 여러 대신들은 흉조라 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일병합조약 3일전에는 숭례문의 현판이 떨어져 내렸다는 기록이 있고,

6.25가 발생되기 몇개월전에는 숭례문의 좌측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네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번 화재는 지난 숭례문의 참사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사건일 겁니다.
 
 
- 망국의 조짐
조선 건국시에 도성을 지으면서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한가지 견해차를 보이는데 그게 바로 궁궐의 방향이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는 남쪽에 관악산으로부터 화기가 너무 강하니 궁궐을 동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도전은 예로부터 제왕의 궁궐은 남쪽으로 지었으니 남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죠...

대신 정도전은 그 도성으로 들어오는 화기를 막기 위해 다섯가지의 장치를 갖추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 네가지 풍수적 장치가

1. 세로로 세워진 현판, 이름에 禮자가 들어간 숭례문

2. 한강과 청계천

3. 현 대우빌딩 근처 남지 연못

4. 해태상

(해태상은 나중에 세워진 것으로, 본래 숭례문에서 광화문까지의 길을 풍수적이유로 직통으로 내지 않았는데

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그 길이 곧게되고 그 대신에 해태상을 배치한 것이랍니다)

이랍니다... 특히 풍수적으로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숭례문이고요...

이렇듯 본래 숭례문은 풍수적으로 관악산에서 치고들어오는 화기를 막기위해 세워진 것인데...

그런데,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사실상 청계천이 끊겨 버리고, (물이 끊기고 수조가 되버렸죠)

개발로 인해 연못이 묻히고,

광화문을 재건하면서 2주전 해태상을 치워버렸다는군요...

현판은 화재 초기 진압시에 제일 먼저 철수했고요...

사실상 한강을 제외하고는 풍수적으로 화기를 막는 장치가 모두 해제되어버린 셈이죠...

위에서도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에 무학대사가 한 말이 아무리 장치를 세워놔도 200년 뒤에는 남쪽에서 엄청난 화기가 몰려와 막을 수 없게 된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임진왜란이었답니다...

그리고 한양을 설계하면서 정도전이 한 말이 실록에 적혀있는데,

"숭례문이 전소되거든 도읍과 국가 전체의 운이 다한 것이니 멀리 피난을 가야 한다" 라고 했답니다...

- 끗 -

자 그렇다면 사실은?

뭐... 풍수지리학이야 그렇다 쳐도 일단 기록이나 살펴보자는 것. 물론 내가 한건 아니고 퍼온거임 ㅇㅇ

- 출처는 http://pokguny.egloos.com/4328494 -

한번 알아봤습니다.

우선 1번 조선실록 선조4....위치는 모르겠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보름전이라고 언급이 되어있으니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밑의 선조 25년 4월13일 외구가 처들어와 부분이 임진왜란의 시작을 알리는것이지요]

그럼 언급된 보름.[15일 ]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런거 없습니다.

보름은 커녕 최근기록은 12월달의 기록으로 무려 4개월전의 기록입니다.

숭례문에 불이 날정도의 사건이면 꽤 큰사건인데 언급조차 없다는것이 의심스럽기에 그전 11월기록까지 봐도 없군요.

ps)추가분.. 선조 수정실록을 뒤지니 화재 기록이있긴합니다만. 화재는 궁 전체에 났었으며 숭례문은 피해없음 입니다. 덤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에 불이났더군요.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25년 4월14일자분 ]

그리고 두번째..

2. 한일병합조약 3일전 숭례문의 현판이 떨어져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부분도 찾아봤습니다.

한일병합조약 [韓日倂合條約] 의 경우 대한 제국 융희 4년(1910) 에 일어난 일이므로 그떄당시의 기록을 보면되겠군요

정확히는 완전히 넘어간 날자가 8월29일이니.8월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제길..일자별이다..]

일자별로 정리하면

○ 순종 3년 8월 1일
- 황후가 통감부인 데라우치 타키코를 접견하다
○ 순종 3년 8월 2일
-이완용에게 위로금을 주다
○ 순종 3년 8월 3일
-중추원 관제를 개정하다
○ 순종 3년 8월 4일
- 이해승, 조종필, 서공순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순종 3년 8월 5일
- 홍순목, 어유귀, 서광범, 안경수에게 치제하도록 하다
- 이준용, 윤덕영, 김윤식을 가자하도록 하다
○ 순종 3년 8월 6일
- 황태자가 산음, 산양으로부터 동경의 관저에 돌아오다
- 임선준과 이재곤을 중추원 고문에 임명하다
○ 순종 3년 8월 10일
- 군 경계 변경에 대하여를 비준하다
- 민종묵을 규장각 제학에 임명하고, 이항구를 승녕부 이사에 겸임하게 하다
○ 순종 3년 8월 12일
- 어윤적, 최기남, 김해룡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순종 3년 8월 15일
-이재면을 흥왕으로 책봉하다
○ 순종 3년 8월 16일
-한상룡, 조진태, 조원성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순종 3년 8월 17일
-흥왕의 전처 정경 부인 홍씨를 흥왕비로 책봉하다
○ 순종 3년 8월 18일
-기쿠치 쓰네사부로, 다카하시 쓰네모토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순종 3년 8월 19일
-임징하, 김경복, 정해택 등에게 시호를 내리도록 하다
- 박제빈, 민상호, 윤우선 등에게 가자하도록 하다
- 이교영에게 흥친왕궁 총판을 대신 시키다
○ 순종 3년 8월 20일
-이용직을 일본에 파견하다
- 서기 등 26명에게 시호를 주다
○ 순종 3년 8월 21일
-황후가 이재순의 처 홍씨, 이재완의 처 서씨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순종 3년 8월 22일
-국무 대신 외에 황족과 원로들이 모여 한일 합병 조약안을 토의하다
- 한일 합병 조약을 맺도록 하다
- 한일 합병 조약이 이루어지다
○ 순종 3년 8월 23일
- 토지 조사법을 비준하다
- 고등 토지 조사 위원회, 지방 토지 조사 위원회 규칙 등을 비준하다
○ 순종 3년 8월 24일
- 흥친왕의 이름을 희로 고치도록 하다
- 최석민, 조성협, 여규형 등의 가자하도록 하다
- 박영교, 조총희, 김학우 등에게 시호를 내려주도록 하다
- 통감부, 경무 총감부의 명령으로 정치와 관련 집합, 야외 집합 금지령을 공포하다
○ 순종 3년 8월 25일
- 지천석 등 43명의 벼슬을 추증하다
- 성기운, 조동희, 김천수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이재각, 이해승, 김영덕 등의 가자하도록 하다
- 우메 겐지로의 상사에 돈을 내려주다
○ 순종 3년 8월 26일
- 죽은 김원흥, 김건호에게 벼슬을 추증하다
- 민병석, 이완용, 고영희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이간 등 57명에게 시호를 주고 이총 등 3명의 시호를 고쳐주다
- 김덕진, 이창선, 홍재호 등에게 가자하도록 하다
○ 순종 3년 8월 27일
- 김득광의 벼슬을 추증하여 주다
- 이재각, 이준용, 이해창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이재극, 윤웅렬, 김각현 등에게 가자하도록 하다
- 어윤적을 칙임관 3등으로 승격시키다
○ 순종 3년 8월 28일
- 이희를 흥왕으로 책봉하다
- 윤숙영, 윤홍섭, 윤정섭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권영수, 정인홍, 조형하 등에게 가자하도록 하다
= 민영돈, 윤숙영, 김승규 등에게 가자하도록 하다
○ 순종 3년 8월 29일
- 한창수, 백우용, 조재영 등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다


[...헉헉..]

여튼..

숭례문 간판이 떨어졌다 라는 이야기는 없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없는 기록인데 그 기록이란놈이 어디서 나온걸까요?

혹시 위에 언급된 숭례문 화재도 거기에 언급이되어있었을까요.[근데 그거 조선왕조실록이라고 언급되어있..]

마지막 제일 중요한거

정도전 [鄭道傳, 1342~1398] 말씀하시길. "숭례문이 전소하면 도읍과 나라의 운이 다한 것이니 멀리 피난을 가야한다".

이부분..집고넘어가고싶더군요[오늘 포스팅의 목적이기도 하고]

조선왕조실록 계속 뒤져보았지만

그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도데체 어디서 나온 자료입니까?

정확히는 태조[1392년 임신/ 명 홍무 洪武 25년] 부터 세종[1450년 경오/ 명 경태 景泰 25년] 까지 읽어봤습니다만

실록에도 나와있지도 않은 말들이더군요..

- 끗 -

그러니까 이런거 운운하기 전에 집회 참가할 생각이나 하자 ㅜㅜ 응?

왜 우리나라는 이따구로 음모론 같은걸 좋아하냐... 아니 이건 음모론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뭐 되도 않는걸 지어내고 그래?

5.3. 나 보고싶은 사람들은 7시에 집회에서 보자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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