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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 필승론 [8]

일병 와고와고반 | 13-10-17 22:52:05 | 조회 : 1009 | 추천 : -


<4자필승론>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내세웠던 선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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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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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대선 이전의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제도>

 

대한민국에서는 제7대 대통령선거를 끝으로 하여
1972년 11월 21일, '직선제 폐지, 간선제 채택'의 내용을 담은 유신헌법에 대한 
찬성/반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14,410,714명(91.9%)의 국민들이 참여하고
13,186,559표(91.5%)의 국민들이 찬성하여 통과되어 헌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10.26사건으로 서거한 이후에 새롭게 출범한 최규하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유신헌법 철폐'와 함께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개헌 작업 주도권을 두고 정부와 국회가 합의를 보지 못하고 계속하여 다투게 되었죠.

하지만 최규하 정부에서는 개헌을 하지 못하였고
최규하 대통령은 1980년 8월 15일을 기하여 대통령직에서 하야합니다.

 

그 후 1980년 9월 1일,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에 전두환이 취임합니다.
이때 치루어진 제11대 대선은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치루어진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1980년 10월 22일,
'유신헌법 철폐'의 내용을 담은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
를 실시합니다.
이 국민투표에는 19,453,926명(95.9%)의 국민들이 참여하였고
17,829,354명(91.6%)의 국민들이 찬성하여 유신헌법이 철폐되었습니다.

이른바 '제5공화국 헌법'이라 불리우는 이 헌법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통과되었던 유신헌법처럼 대통령 연임을 불가능하게 규정하였고
'7년 단임제'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5공화국 헌법에서도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투표하게는 하지 못하고
유신헌법에서와 같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게 하였었죠.

 

그러나 1987년 6월 10일, 6월민주항쟁을 겪은 후에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이른바 '6.29민주화선언'을 발표하여
국민들에게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였고, 노태우는 이 약속을 지키게 됩니다.

1987년 10월 27일, 20,028,672명(78.2%)의 국민들이 참여한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18,640,625명(91.5%)의 국민들이 찬성하여 제5공화국 헌법이 철폐되었습니다.

그 후 대한민국은 '5년 단임제'를 채택하였고 이때 채택된 대한민국의 헌법이 2013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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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를 마지막으로 하여
22년만에 부활한 직선제 대통령 선거인만큼 열기는 매우 뜨거웠습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인 노태우 후보가 출마하였고
야당에서는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하였던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박정희 정권 당시 그의 2인자였던 김종필 후보가 출마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후보와 김영삼 후보는 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하여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을 벌였고, 결국 이 두 사람은 단일화에 실패하여
야권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잘 알고 있었으나
22년 만에 다시 찾아온 대통령선거였던 만큼 두 사람 모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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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필승론>

제가 아래에 첨부한 사진 자료들에서
제13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고향'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노태우 후보
는 '대구광역시'입니다. 
경상도(영남) 지방
이죠.

 

김영삼 후보
는 '경상남도 거제'입니다. 
노태우 후보와 마찬가지로 경상도(영남) 지방이죠.

 

김대중 후보
는 '전라남도 신안'입니다. 
전라도(호남) 지방입니다.

 

김종필 후보
는 '충청남도 부여'입니다.

 
(발퀄 죄송합니다 ㅠ_ㅠ)

위에 마련한 지도는 '각 후보들의 고향과 지지기반'을 표현한 것입니다.
1987년 제13대 대선 당시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25,127,158명(2510만)이었습니다.

아래에 1987년 제13대 대선 당시의 지역별 유권자 수와 후보별 우세 지역을 구분해보겠습니다.

서울 - 6,332,346명
경기 - 3,270,127명
부산 - 2,233,092명 / 김영삼 우세
경남 - 2,122,061명 / 김영삼 우세
경북 - 1,782,461명 / 노태우 우세
충남 - 1,708,727명 / 김종필 우세
전남 - 1,580,881명 / 김대중 우세
전북 - 1,241,878명 / 김대중 우세
대구 - 1,236,326명 / 노태우 우세
강원 - 1,018,999명
인천 - 955,271명
충북 - 854,232명 / 김종필 우세
광주 - 520,488명 / 김대중 우세
제주 - 270,629명

후보들에게 우세한 지역에서의 유권자 수를 더한 것과
서울/경기/강원/인천/제주의 유권자 수를 더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김영삼 - 4,315,553명
김대중 - 3,343,247명
노태우 - 3,018,787명
김종필 - 2,562,959명

서울/경기/강원/인천/제주 - 11,847,372명

대통령 선거는 제가 임의로 작성한 각 후보들의 고향의 유권자들만이 투표하는 것이 아니죠.
바로 11,847,372명의 유권자들도 자신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게 됩니다.

 

이에 김대중 후보는 자신의 연고지인 호남을 시작으로 해서
인구가 많지만 각 후보들과는 연고가 없는 서울/경기권을 공략하는 선거 전략을 세웠습니다.

즉,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 후보는 인구가 많은 경상도에서 대결하며 표가 갈리게 하고
김종필 후보는 이미 한물 간 사람이고 인구가 적은 충청도를 휘어잡게끔 하고
자기 자신은 연고지인 호남지역과 인구가 많은 서울/경기권을 휘어잡는다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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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김대중 후보의 4자필승론 전략은 어느 정도는 성공했지만 많이 실패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노태우 후보는 경북 1,108,035표(66.38%) / 대구 800,363표(70.69%)
대구경북 지역에서 타 후보들에 앞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노태우 후보가 경기 1,204,235표(41.44%)를 득표하여 타 후보들에 비해 경기 지역에서 압승을 하였고
김영삼 후보의 연고지인 경남에서 792,757표(41.17%)를 득표하여 김대중 후보의 4자필승론이 빗나가게 됩니다.

김대중 후보가 압승하리라 생각했었던 경기에서 
김대중 후보가 패배하고
김영삼 후보가 압승하리라 생각했었던 경남에서 김영삼 후보가 압승을 하지 못한 것이었죠.



김대중 후보는 전남 1,317,990표(90.28%) / 전북 948,955표(83.46%) / 광주 449,554표(94.41%)
호남 지역에서 아주 높은 득표율을 보이며 전 지역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후보는 서울 1,833,010표(32.62%) / 경기 647,934표(22.30%)
수도권에서 선전하지 못하였죠.

 

김영삼 후보는 부산 1,117,011표(55.08%) / 경남 987,042표(51.26%)
경남 지역에서 승리하였지만 압승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김영삼 후보는 서울 1,637,347표(29.14%) / 경기 800,274표(27.54%)를 득표하였습니다.
노태우 후보, 김대중 후보, 김영삼 후보 세 후보 모두 서울에서는 비슷한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김종필 후보는 충남 691,214표(45.03%)를 얻은 것이 다입니다.
김종필 후보는 충북 지역에서조차 패배하였습니다.



파란색 - 노태우 우세 / 빨간색 - 김영삼 우세
노란색 - 김대중 우세 / 초록색 - 김종필 우세

결국 각 후보들이 자신의 연고지에서 승리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에는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 우세하였던 노태우 후보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서울지역 득표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김대중 1,833,110표(32.62%)
2. 노태우 1,682,824표(29.95%)
3. 김영삼 1,637,347표(29,14%)
4. 김종필 460,988표(8.20%)

김종필 후보를 빼고는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후보의 득표율 차가 별로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약

1.김대중이 각연고별로 4개로 나눠서 표를 득표하고

2.본인은 수도권+호남에서 이겨서 대통령 해먹겟다고 4자필승론을 만들었음

3.지역감정 호소하는데 박정희각하는 각 분야별로 적절한곳으로 균형발전 했다.

 지역감정은 김대중이 대통령되려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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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장 푸르스트12년 전 | 신고

    1.김대중이 각연고별로 4개로 나눠서 표를 득표하고
    2.본인은 수도권+호남에서 이겨서 대통령 해먹겟다고 4자필승론을 만들었음
    3.지역감정 호소하는데 박정희각하는 각 분야별로 적절한곳으로 균형발전 했다.
     지역감정은 김대중이 대통령되려고 만들었다.


    논지 전개가 또 틀렸잖아 임마.
    니 글 그대로 논지 전개하면 이끌리는 결론은
    [지역감정은 김대중이 대통령되려고 만들었다.]가 아니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는데 지역감정을 이용했다.]겠지?
  • 일병 와고와고반12년 전 | 신고

    @푸르스트만들고 이용함
  • 중장 푸르스트12년 전 | 신고

    그 만들었다는 근거를 대라니까 딴소리하잖아.
    근데 못대는데 당연하지. 안만들었으니까 근거 자체가 있을리가 없거든
  • 이병 돌캣12년 전 | 신고

    ㅋㅋㅋㅋ 이런 계산은 네 후보 모두 했었지 이새끼 병신인가?

    아래글의 댓글에도 썼었지만 김대중이 호남지역을 필두로 나선건 4자필승론 나오기 한참 전이다. 그런데 그당시 양자대결구도에서 굳이 호남푸대접론을 들고나오며 선거전략을 짜는건 말이 안된다. 왜? 호남은 영남에 비해 인구수가 부족하기 때문이지.
  • 일병 솔직히인기남12년 전 | 신고

    @돌캣호남 충청 강원 다합쳐도 영남보다 안된다죠?
  • 이병 돌캣12년 전 | 신고

    지금은 그런데, 70년대에는 호남+충청 하면 영남이랑 얼추 비슷했음. 지금은 님 말이 맞음
  • 이병 돌캣12년 전 | 신고

    70년대에 박정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지만 정치신인 김대중의 인기 또한 엄청났다. 박정희가 움찔했을 정도였으니 뭐...

    내가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만 지역을 가르고 유리한 정치적 지형을 형성하는 전략은 박정희 밑에 있던 참모가 낸 아이디어다. 구미공장 지하실에 붙어있던 최초의 찌라시가 신문에 게재되면서 전라도에 대한 분노가 영남을 뒤덮었지. 이에 대한 반감으로 전라도에서는 김대중을 밀어주기 시작했고 말이지.
  • 이병 돌캣12년 전 | 신고

    김대중이 본격적으로 전라도의 몰표를 이용한건 4자필승론때부터가 맞다. 근데 지역감정을 김대중이 만들었다는건 개소리고, 이용했다는게 팩트지. 니가 좋아하는 팩트 이 시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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