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스트 | 13-10-19 16:57:34 | 조회 : 7630 | 추천 : +37
1. 출처 한국갤럽
5년 차 4분기 김영삼 정부는 6%, 김대중 정부는 24%, 노무현 정부는 27%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 4분기 지지율 평균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2. 출처 KBS-미디어리서치, SBS한국리서치
2007.10.07.헉! 노대통령 지지율 53%라니… 한나라당 긴장.세계일보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071007203514746
KBS 조사에서 이번 노 대통령 지지도는 지난 8월10일의 35.1%에서 18.6%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53.7%).
같은 날 발표된 SBS·한국리서치 조사에선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도가 43.4%로, 지난달 말의 30.2%에 비해 13.2%포인트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두 조사에서 공히 남북 정상회담 성과가 반영돼 노 대통령 지지도가 급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3. 출처 CBS-리얼미터
2008.02.22.노대통령, 국정수행지지율 27.9%로 마침표.아시아경제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080222142910682
5일 통일부가 추미애(秋美愛) 국회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와 문민 정부의 대북지원 실적은 각각 2억7천208만달러, 2억6천172만달러로 전체 규모는 국민의 정부때가 조금 많았다.
그러나 연평균 실적을 비교하면 5년간 지속적으로 대북지원이 이뤄졌던 국민의 정부때는 연평균 5천442만달러였던 반면 집권 3년째인 95년 6월부터 지원을 시작한 문민 정부때는 연평균 9천815만 달러에 달했다.
반면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은 문민 정부때 839만 달러였던 것이 국민의 정부때 4천83만달러로 무려 4.8배나 늘었다.
정부간 교역규모(비거래성 포함)는 문민 정부 당시 12억2천880만8천달러에서 국민의 정부때 20억2천521억4천달러로, 경협 규모는 문민 정부때 599만1천달러에서 국민의 정부 때 9억5천75만1천달러로 늘었다.
민간교류의 경우 체육행사를 포함한 사회문화교류협력사업을 위한 방북 건수가문민 정부때는 38건에 불과했으나 국민의 정부때는 80배가 넘는 3천135건에 달했으며 북측의 방남 건수는 문민정부때 한 건도 없었으나 국민의 정부때는 1천164건에달했다.
김대중은 김영삼 시절의 대북정책을 이어서 오히려 퍼주기에서 교류/무역/협력/외교로 서로 이득이 되는 합리적 외교를 함.
(무작정 퍼주기에서 탈바꿈)
(2)김대중은 경부고속도로 만들지 말라며 드러누웠다?
김대중이 경부고속도로에 드러누웠다고 주장하는 짤은
수자원 공급을 통해 농민에게 도움을 줘야한다는 사진임.
김대중이 반대한게 아니라 그냥 신민당이 반대한 것.
6. 노무현이 오히려 부자를 위했고 이명박이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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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기자2013.10.03 12:06:54
검찰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사건 수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지난 2008년 이른바 기록물 유출 사건 검찰이 국가기록원 원본과 봉하이지원 사본이 일치한다고 결론 내린 것에 대해 새누리당은 “흐지부지한 수사”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제대로 한 수사”라고 공박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과 김현 민주당 의원은 3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란히 출연해 ‘국가기록원에 원본이 없다’는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사건 검찰 수사발표와 관련해 여야 입장을 들고 공박을 벌었다.
권성동 의원은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없는 것에 대해 “어제 검찰에서 발표한 ‘국가기록원에 대한 압수수사 결과’에 의하면 아예 이관을 안 했다는 것 아닌가?”라며 단정했다.
그러면서 2008년 검찰수사발표에 대해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위반이다. 무단반출하면 그런데도 처벌할 사람이 없으니까, 더 이상 수사를 할 의미가 없으니까 그 상태에서 덮은 것”이라며 “노무현 재단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검찰에서 (원본과 사본을) 철저히 확인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발을 하고 검찰수사가 시작되니까 겁이 나서 반납을 하고.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이게 흐지부지하게 됐는데.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은 아마 회고록을 작성하려면 기본 자료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아마 봉하마을로 갖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현 의원은 “(이지원)사본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원본이 일치하다는 것은 지난 2008년도 검찰의 수사 결과로 발표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 의원이 당시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된 수사가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늘 새누리당은 자신들한테 불리하면 흐지부지 수사고 자신들한테 유리하면 철저한 수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힐난했다.
그러면서 “봉하마을 이지원 시스템에 사본이 설치됐다는 것은 즉 원본과 사본이 동일하다고 얘기한 것은 대통령 서거 이전인 2008년 8월 25일이다”며 “노무현 대통령 기록물 유출사건에 대한 불기소 종결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도 아니고 10월 29일이다. 덮은 것이 아니고 제대로 수사한 결과를 발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사본을 가져올 때는 원본이 있는 것이다. 그 원본은 어쨌든 기록관에 넘긴 것이다. 그 원본의 사본을 가지고 나오신 것”이라며 “이것은 대통령께서 기록관으로 가서 매일 출퇴근하면서 볼 수 없는 일이니 본인이 그 사본을 가져오겠다고 말을 하셨고, 이명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은 제가 잘 모시겠다’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말을 한 바 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대통령이) 쇠고기 파동이 있고 국면이 어려워지니까 이지원 문제를 정치 쟁점화 시킨 것”이라며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사리를 잘해서 따져보겠다’고 하다가 계속 주변에 있는 참모들을 괴롭히니까 반납을 한 것이다. 2008년 7월 16일에 돌려줬고, 그때 당시에 검찰이 수사를 했고 ‘일치하다, 원본과 사본이 일치하다’는 것이 수사 결과의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시 검찰이 수사 결과를 어떻게 말했냐면 ‘봉하마을 이지원 시스템에 복사본이 설치됐다.' 이렇게 얘기했다. 복사본이 설치됐다는 것은 원본과 복사본 그러니까 원본이 있으니 복사본이 설치됐다는 거 아니겠나?”라고 거듭 밝혔다.
봉하이지원(복사본) 청와대이지원(원본)
봉하이지원(이명박이 복제) 검찰 5년전 원본 있다고 인정. 결론은 모다?
9.북한에 8조를 퍼줬다?
정상적인 상거래행위, 경수로분담금, 개성·금강산사업 투자액을 모두 포함
□ 최근 국내 일각의 ‘8년간 8조원 대북지원’ 주장은 사실과 다름.
o 8조원이라는 금액은 인도적 대북지원 이외에 일반적으로 대북지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정상적인 상거래행위, 경수로분담금, 개성·금강산사업 투자액을 모두 포함하여 과대 계산한 것임.
* 8조원 지원 주장내역 : △대북지원 4조 5,885억원 △경수로분담금 2조 1,690억원 △대가지불 약 9,800억원(9억 8,181.5만 달러) △개성·금강산 투자액 5,990억원
o 실제 국민의 정부 이후 지난 8년간 대북지원액은 2조 3,003억원이며, 이 또한 모두 현물로 지원되었으며 현금지원은 전혀 없었음.
□ 대북지원액에 국내 농가 지원을 위한 양곡관리특별회계 지출
(2조 2,882억원)을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
o 남북간 식량차관 계약시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제공하게 되어 있고, 국제시장 쌀 가격(톤당 330$)이 국내산(톤당 174만원, 1,783$)의 1/5수준으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해외구매가 유리하나, 국내산 잉여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 △국내쌀 과잉 재고 해소 △국내쌀 공급과잉으로 인한 국내쌀값 하락 방지 △매년 보관 관리비용 지출 부담 절감 등 국내 농가 지원 차원에서 농민단체 및 농정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임.
- 따라서, 외국산과 국내산 가격 차이에 따른 양특회계 지원분은 대북지원비용이 아니며 국내농가 지원 비용임.
□ 경수로 분담금 2조 1,690억원은 국제기구에 제공한 비용으로 대북지원이 아님.
o 경수로 분담금은 ‘94년 10월 제네바합의 이전 김영삼 대통령이 약속(’94.9)한 사항으로, 국민정부·참여정부는 이러한 약속에 따라 경수로 비용을 집행하였음.
o 경수로 분담금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추진한 사업비용(국제기구인 KEDO에 지불)으로 북한에 지급된 것이 아니며, 상당 부분의 경수로사업비는 한전 등 우리 업체에게 지급되었음.
□ 금강산 관광대가 등 9억 8,181만불(약 9,800억원)은 정상적 경제행위에 따른 대가지불로서 대북지원과 성격이 다름.
o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사업 등은 민간기업이 경제논리에 따라 자신의 이윤창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경협사업으로 이에 따라 이루어진 대가지불은 정상적 상거래 행위로 통상적 대북지원이 아님.
- 관광 대가의 경우, 관광에 따른 입장료와 관리비용으로서 중국 등 외국인의 경우에도 북한 관광시 요금을 지급하고 있음.
□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사업 투자액 5,990억원도 대북지원과 무관함.
o 동 투자액은 해당지구 기반시설 건설 및 공장 등 건물건축, 각종 설비투자 등에 소요된 비용으로 북한에게 지원한 것이 아님.
* 개성공단 투자 : 입주기업 공장건축 등 투자금, 부지조성공사, 기반시설공사, 전력·통신 구축, 편의점 등 기타 시설 투자금
* 금강산 관광사업 투자 : 온정각·부두시설·해상호텔 등 현대아산 직접투자, 골프장 등 36개 협력업체 시설 투자금
□ 결론적으로 8조원 지원 주장은 사실이 아님.
o 국민의 정부 이후 대북지원 규모는, 정부 차원에서 쌀·비료 등 현물로 1조 7,005억원, 민간차원에서 현물로 5,998억원 등 총 2조 3,003억원 상당의 현물임.
※ 국제사회(한국 제외)는 ’95~’05년간 23억 6,133만$를 북한에 지원
- 식량지원의 경우 ’95년 이후 우리가 245만톤을 지원, 미국은 205만톤, 일본은 약 100만톤을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
10.
(1)박정희는 우리나라를 이끈 구국의 지도자이다?
전형적인 일베 자가당착 논리. 노무현 때는 경제발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여서 노무현 업적은 별거 없고 그냥
그 시기가 잘했다! 라고 하지만 박정희는 박정희가 잘해서 경제발전했다는 이중잣대
새누리당이 경제를 싸그리 말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언론과 새누리당에선 세계경제의 불황으로 인해서 경제가 나쁘다고 언플질중
박정희시대의 경제성장률과 박정희 경제의 허구
*박정희가 경제기적을 이루었다는 주장은 70%는 과장과 허구다.
경제학자 강기춘은 정권별 경제성적표 (김영삼정권 2년까지)에 관한
논문에서, 전두환.노태우정권 각각 12점으로 1위, 김영삼정권이
10점으로 3위, 박정희는 6점으로 평가함으로 꼴찌였다.
왜, 그런데 사람들이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렸다며 난리를 피우는가?
경제에 관한 한 전두환시절이 박정희시절보다 더 좋았음에도
전두환은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고, 박정희는 경제영웅으로 취급받는가?
둘 다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둘 다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둘 다 자유.민주를 파괴하고, 둘 다 똑 같이 인권을 유린했는데...
그 차이는 전두환은 사법 처리되고 감옥에 감으로 나름대로
역사적 심판을 받아 국민들의 뇌리에 전두환은 나쁜 놈으로 각인되어 있고,
박정희의 경우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중동과 같은 수구세력들의 계속되는 보호의 결과로
태반의 사람들의 머리에는 여전히 포장된 박정희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시대의 경제성장률]
단순 숫치상으로 전두환이 1위, 박정희 2위, 노태우 3위, 김대중 4위
역대 집권자들의 연평균실질성장률(이하 연평균성장률)은 전두환 9.3%,
박정희 8.5%, 노태우 7.0%, 김대중 6.8% 순으로 단순 수치상으로는 박정희가 2위이다.
-상대평가에서는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
박정희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3.3% 더 높았으나 대만보다 1.5% 낮았고,
전두환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5.7% 더 높았고 대만보다 0.8% 더 높고,
김대중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4.8% 더 높았고 대만보다 3.7% 더 높았다.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면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선진국에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참조하면 김대중과 전두환의 경제는 박정희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김대중은 또한 경제성장에서 세계 최고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단 5년만에 대한민국을 IT강국, 전자제품강국, 생명공학의 강국으로 올려 놓았고,
수출 최대 그리고 흑자,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세계 4위로 올렸고,
한국의 영화산업을 세계 2위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등 한류의 꽃을 피웠다.
(노무현 정권 들어 이 현상은 더욱 발전이 되고 있다)
-지금 중국은 26년간 년 평균 9.6%의 성장을 하고 있다.
박정희는 명함도 못 내민다.
대만.싱가폴도 박정희보다 나았다.
독일의 히틀러와 소련(구 러시아)의 스탈린은 박정희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짧은 기간에 그리고 훨씬 큰 성장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북한도 지금은 몰락을 했지만 한때는 남한을 압도하며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1954년부터 1962년까지 국민소득의 연평균 성장률은 남한은 4.7%,
북한은 22.1%에 달했다.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참조)
또한, 박정희 전기간에 걸쳐 남한은 개인소득에서 북한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셀리그 해리슨의 <코리안 엔드게임(Korean Endgame)>에 따르면
남한은 1980년대 초까지 1인당 소득에서 북한을 따라잡지 못했다..
-역사학자 최상천의『알몸대한민국 빈손 김대중』의 내용에는;
박정희경제를《기적》이라고 한다면 세계역사는《기적의 역사》로 둔갑한다.
독일의 히틀러는 나치의 기적을 일으켰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사무라이의 기적을 일으켰고, 소련의 스탈린은 공산당의 기적을
창출했다.《한강의 기적》은 이들이 이룬 기적에 비하면《장난감 기적》에
불과하다. 그들은 불과 10-20년 동안, 자기들의 조국을 형편없는 3류
국가에서 세계패권을 다투는 대제국으로 만들었다.
스탈린의 경우 공업생산량에서 유럽4위, 세계5위에서 유럽1위, 세계2위로
끌어올렸다. 스탈린 12년 통치기간에 세계공업 생산량 비중이 7%에서
20%로 기적적인 비약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한국보다 30배나 큰 중국의 경우 등소평이후 20년 넘게 연평균
9.2%의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2020년쯤이면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한강의 기적보다 100배나 거대한《양자강의 대형기적》이
틀림없다
(2)박정희는 빨갱이,친일파가 아니였다?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
국 사편찬위원회가 합격시킨 8개 교과서 중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5·16 군사반란에 대한 서술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 '한일협정·쿠데타 미화... 한국사 교과서 논란'기사 참조.
보수우 익들과 딸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에서 구원해준 위대한 구국의 아버지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당시 나라가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남북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며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다. 그 때는 단순히 박 대통령이 혼자 생각이었지만, 이제 버젓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박정희 미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박정희는 공산주의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5.16군사반란은 구국의 혁명일까? 그 당시로 돌아가면 그렇지 않다. 역사교과서를 기술하려면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 박정희는 해방정국에서 대한민국 전복 '반란기도죄'로 1심서 무기징역, 2심서 징역 15년에 형집행정지를 받은 '빨갱이'였다.
박 대통령 새누리당 비대위원 시절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바로 그 국회의원들이 30년만에 부활된 '내란예비음모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다. <조중동>은 이미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죄'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빨갱이였던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두 번의 '쿠데타'로.
그럼 박정희가 왜 빨갱이였는지 보자. 이는 단순하 비난과 박근혜 대통령을 모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가 판결한 것이다. 빨갱이가 아닌데도 사법부가 박정희를 빨갱이로 만들었다면, 제2인혁당과 김대중 내란음모처럼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을 받아내면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박정희 무죄판결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는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1948년 11월 11일 박정희는 체포됀다. 당시 그는 육군 소령, 보직은 육사 1중대장이었다. 당시 군은 한 달 전 10월 14일 발생한 '여순사건' 이후 좌익분자를 색출했는 데 박정희가 연루된 것이다. 남로당 군 총책인 이재복을 수사하다가 박정희가 남로당 당원임을 알았다. 이재복은 박정희 형인 상희씨 친구였다. 박정희는 이재복에게 포섭됐다.-2012.06.14 <지실의 길> '좌익' 박정희 군사재판 '판결문' 보셨나요? 참조
<진실의 길> 해당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숙군(肅軍) 당시 실무책임자로 조사과정에서 박정희가 쓴 '자술서'를 직접 읽어본 김안일 특무과장은 "박정희는 '대구 10.1사건'으로 형 박상희가 우익에 피살되자 그에 대한 복수심과 형 친구 이재복의 권유로 남로당에 가입한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춘천 8연대 시절 박정희의 직속상사였던 김점곤 장군(평화연구원장)도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었다"고 97년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박정희는 1946년 '춘천8연대'에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경비중대장을 지냈고,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김점곤 평화연구원장은 정운현씨와 인터뷰에서 박정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춘천 시절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이 춘천까지 찾아와서 박정희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 때 박정희는 나에게 이재복을 '숙부'라고 소개했습니다.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더군요."-2004.08.11 <오마이뉴스> "형님 친구 꾐에 빠져 남로당 가입"
<오마이뉴스>는 김 원장은 "남로당에서 박정희에게 군 총책을 맡길 때 이미 그는 당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정희는 빈농 출신에다 형의 죽음 때문에 원한이 있었고, 특히 사범학교 때 조선공산당사건을 접했으며, 또 군관학교 수석 졸업 등 이른바 '최고의 성분'을 가지고 있어 남로당 측에서 탐낼만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박정희는 자신이 남로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박정희와 관계했던 사람들 증언은 그가 남로당원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박정희는 1949년 1심에서 국방경비법 제18조, 제33조 위반으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심에서는 징역 10년으로 감형받았다, 더구나 형집행정지까지 받았다. 당시 정국에서 육사 중대장이 남로당에 연루됐는 데도 2심에서 형집행정지라는 '특별대우'를 받은 이유는, <진실의 길>은 해당 기사에서 "당시 재판에 관계했던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가 수사과정에서 적극 '협조'한 공로를 군 지휘부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그가 적극 협조한 것은 무엇일까? 동료들을 판 것이다.
하지만 '빨갱이'란 주홍글씨가 박정희에게도 두고두고 따라 붙었는 데 1961년 군사반란으로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남로당 전력은 미국과 한국내 보수세력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안겨주었다. 박정희와 육사 동기생인 정강 장군은 1960년대 후반 청와대 사회.언론 담당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김종신씨에게 "5.16 쿠데타가 일어난 아침 주동자가 박정희 소장이라는 말을 듣고 나라가 뒤엎어질 줄만 알았다. 나는 그와 동기생이기 때문에 그의 전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위험한 인물로 봐 왔다"고 말했다(위 <오마이뉴스>기사 참조)
그리고 "평생 전 같은 군인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군복을 벗고 나선 제5대 대통령 선거( 1963년 10월 15일)를 이틀 앞둔 '민정당'(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이 아님)윤보선 후보측은 박정희 사상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동아일보>는 13일 호외까지 발행한다.
▲ 1963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 호외. 박정희씨 무기언도를 받았다는 제목이 선명하다.
<동아일보> 호외에는 '민정당 여·순사건 자료를 공개', '당시의 두 신문 보도 제시라는 통단 제목에 '49년 2월13일 군법회의서 박정희씨에게 무기 언도 심판관은 김완용 중령 등 7명'라는 제목 설명이 실렸다.
" 민정당은 13일 상오 박정희 후보가 '여순반란사건 이래 진행된 숙군 당시 1949년 2월 13일 군법회의에서 김학림, 조병건, 배명종 등과 같이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았다'는 요지의 1949년 2월 17일 경향신문기사와 '서울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관 김완룡 중령 이하 6명, 검찰관 이지형 중령 이하 1명이 참석한 가운데 심리한 결과 박정희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요지의 1949년 2월 18일자 서울신문 기사를 증거물로 발표했다."
박정희는 누구인가? 일제식민지때는 '황군장교'였고, 1948년 여순반란 사건처럼 좌익이 한국사회를 지배하자 남로당에 가입했지만, 숙군 대상에 올라 처형 당할 처지가 되자 동료들을 밀고했다. 당연히 그는 자기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1961년 5월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18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1972년에는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긴급조치를 난발해 말하는 자유를 빼앗았다. 그는 지독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지향한 사람이다.
우리가 박정희를 지시할 수 있고,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다. 김대중을 지지할 수있고, 이명박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팔고, 사상을 팔고, 동료를 판다면 비판해야 한다. 이런 것은 감추고, 잘한 것만 들추어내 미화한다면 민주주의와 정의에 위배된다.
박정희는 분명 황군장교로 조국을 팔았고, 남로당원으로서 동료를 팔았다. 또 권력을 잡기 위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가 아무리 우리 먹을거리를 해결해주었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와 양심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이유다.
일본이 패망하자 베이징을 거쳐 전친항에서 부산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후 1946년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에 입학하여 3개월간 교육을 마치고 조선국방경비대 육군 소위가 되었다. 그 당시 1946년 9월 대구에서 좌익에 의한 시위가 일어났는데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가 시위를 주도하였다. 10월 1일 대구시민들과 경찰간의 충돌이 발생하였고 박상희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형의 영향을 받았던 박정희는 군부에 비밀리에 조직된 남로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47년 육군소령이 되어 육군사관학교 중대장이 되었다. 1948년 10월 국방군 내 좌익계열의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을 거부하고 일으킨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나자 육군 정보사령부 작전참모로 배속되었다. 그해 박정희는 당시 국군 내부 남로당원을 색출하자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만주군 선배들의 구명운동과 군부 내 남로당원 존재를 실토한 대가로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다. 이후 15년으로 감형되어 군에서 파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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