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의료 민영화 안 한다”와 “의료 민영화가 아니다”였다.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최연혜 코레일 사장도 똑같은 말을 했다. “수서발 KTX 분리가 철도 민영화는 아니다”는 해명이다. 앞서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청와대 수석도 나섰다. 역시 같은 말이다. 철도든 의료법인이든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민영화가 아니다”라는 동일한 해명을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하는 사이 철도노조의 파업은 25일로 역대 최장인 17일째에 접어들었다. 의료민영화를 둘러싼 의료계 불씨도 커졌다. 동네의원들은 다음달 집단휴진을 예고했다.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해법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민영화를 중단하라”는 노조와 시민단체, “민영화가 아니다”라는 정부. 양측은 같은 말을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며 상대방을 비난한다.
‘국내 의료기관 대부분은 이미 민영이므로 민영화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정부가 의료 민영화에 반박하며 내놓은 해명자료의 기조는 이런 것이다. 철도 민영화 공방도 비슷한 수준에서 전개된다. 정부는 민영화를 기반시설 매각, 공기업 지분 매각 등 소유·경영·구조 개편과 관련한 개념으로 쓴다. 수서발 KTX 자회사는 코레일 41%, 공공자금 59%로 자금이 제한되므로 민영화가 결코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 철도노조는 주주가 있는 자회사 설립 자체가 민간 참여를 열어주는 것으로 본다. 경쟁체제 도입이 곧 민영화라는 주장이다. 보건의료단체들도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받을 길을 열어놓은 것 자체가 의료 민영화이고 상업화”라고 말한다. 다른 말을 하며 상대를 ‘개념오류’라고 지적하니 대화는 지지부진이다.
설득을 포기한 마당에 남은 건 물리력밖에 없다. 사태가 악화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시민들이 갖는 불안이 뭔지 이해하고 그걸 해소할 방법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조나 시민단체가 ‘민영화’라는 선동문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박형근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장 의료비가 폭등할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차분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성탄절인 이날 열차 운행은 KTX의 경우 73%, 새마을호·무궁화호는 각각 56·61%, 수도권 전동열차는 85.7%의 운행률을 기록했다.
이영미 권기석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