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실체 [2]

33 KissTheSky | 2019-02-11 19:22:26 | 조회 : 129 | 추천 : +1






* 안중근의 '일본맹주론'. 동양은 일본을 맹주로 해서 힘을 합친다.


*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자 '황인종이 백인종에게 승리했다'며 기뻐했다.


* EU같은 '아시아연합'(작은 버전의 대동아공영권?)을 만들자.

 

 

 



안중근의 조상들은 대대로 황해도 지역에서 향리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조선시대 향리라는 게 요즘으로 말하면 지역의 실무를 맡는 지방공무원들인데,
이들은 당시에 율법상 해당 지방을 벗어날 수도 없었고 과거에 응시하지도 못했으며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지도 못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들의 주 수입원이 지역민들에게 강탈하는 뒷돈이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때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오면, 전근대사회의 특성상 이 중앙관리들은 어떻게 하든지
이 지방관리들인 향리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해당지방의 행정이 돌아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해당 지방의 실질적인 관리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중앙관리와 지방관리 할 것 없이
관청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은 모두 수탈자가 되었던 것이다. 

중근이네 집안은 이렇게 다세대 간에 걸친 토착수탈로 얻은 자본을 기반으로 개족보를 사서 신분을 세탁했다.
중근이의 조상들은 개족보로 명문 안씨 가문에 슬며시 미끌어져 들어간 후,
우선 비교적 쉬운 무과에 몇몇이 급제해 중앙정부에 발을 들이밀었고, 이후에 중근이의 아비는 진사시까지 합격하였다.

진사시라는 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사시 1차 합격 정도이다.
물론 당시는 반자본주의, 전근대적인 중앙집권체제였기 때문에, '중앙관리'라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권력과 금권을 의미했다. 아울러 사시1차에 해당하는 진사시나 생원시만 합격해도, 자기 고을에서는 양반으로서 행세깨나 할 수 있었다.
 
중근이네 가문은 자기 이웃들을 쥐어짜서 자본을 획득했고, 이를 기반으로 신분을 세탁해서 명실상부한 양반가문으로의 짬뿌를 목전에 두고 있던 이들이다. 그런데 웬걸? 일제로 인해 세상이 개벽했고 나의 이웃들은 더 이상 나의 아랫것들이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나한테 머리를 조아리며 상납이나 하던 아랫것들이 공부를 하고 사람취급을 받는 개꼬라지가 연출된다. 이렇게 중근이네와 같은 집안들은 그동안 힘들게 이뤄놓은 것이 한 방에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중근이의 행적은 이 사회그룹들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것이 바로 당시에 지방토착 유력자들이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이유이다.

응칠이는 히로부미를 암살할 때까지 집안의 돈을 까먹고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무직자로 살았다.
응칠이가 한 때 상하이를 방문한 이유는, 얘가 원래부터 방랑벽이 있던 차에 '상하이에 뭐 걸리는 거 좀 없나.' 하고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청나라인을 구타한 사건에 대한 도피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응칠이는 한 때 자신의 처형과 미곡상을 동업하기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고, 유명한 미곡상의 동생과도 동업했던 적 있으나 얼마 후 폐업하였다. 즉, 구타 및 협박 사건이 벌어졌던 평양에서의 삼합의 조합사업이 사업실패의 처음이 아니다. 
응칠이의 처자식을 블라디보스톡으로 데려다 준 정대호라는 자도 한반도에서는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응칠이는 어릴 때부터 쭉 '중근'이나 '자임', 소지' 등의 이름만 썼을 뿐, '응칠'은 응칠이의 형제들조차도 모르던 이름이다. 심지어 얘들의 엄마조차 이 이름을 처음 들었다.

위인전에는 안중근 등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점이 나서 응칠이라 지었다는, 개도 안믿을 개소리를 싸질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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