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enable JavaScript in your browser to load website properly.

Click here if you'd like to learn how.

바람 빠진 풍선과 비누방울 같은 남자 [1]

대장 카카오프렌즈. | 25-07-22 23:19:11 | 조회 : 21 | 추천 : +1


바람 빠진 풍선과 비누방울 같은 남자

"야, 풍떨이! 너 또 내 필통 썼지?"

탁 트인 도서관 열람실, 날카로운 목소리가 쨍하게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부솝, 이름처럼 반짝이고 가벼운 인상과는 달리 성격은 까칠하기 그지없는 남자였다. 그의 눈총을 한 몸에 받는 풍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들었다.

"아, 미안. 네 건 줄 몰랐네. 다 똑같이 생겨서."

풍떨이는 싱겁게 웃었다. 그의 이름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어딘가 느슨하고 헐렁해 보여서 붙은 별명이었다. 매사에 심드렁하고 무심한 듯 보여도, 사실은 속이 깊고 따뜻한 친구였다.

부솝은 풍떨이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혈압이 오르는 듯했다. 

"세상에 필통이 얼마나 많은데 똑같이 생겼다는 소리가 나와? 내 건 이 비누 거품 그림이 딱 박혀 있잖아!"

그는 자신의 필통을 들이밀며 흥분했다. 풍떨이는 그제야 필통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비누 거품 그림을 발견하고는 픽 웃었다. 

"아, 그거 귀엽네. 네 거였구나."

"귀엽긴 뭐가 귀여워! 아 됐어, 너랑 말 섞기도 싫어."

부솝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풍떨이는 그런 부솝의 뒷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늘 이런 식이었다. 사사건건 부딪히고, 부솝은 열을 내고, 풍떨이는 태평했다. 주변 친구들은 그 둘을 '톰과 제리' 같다고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솝은 항상 풍떨이 옆자리에 앉았고, 풍떨이 또한 부솝의 투덜거림을 귀찮아하면서도 늘 묵묵히 받아주었다.

어느 날, 둘은 조별 과제 때문에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게 되었다. 피곤함에 부솝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날이 서 있었다.

"너는 왜 이렇게 대충대충이야?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해?"

"너무 완벽하려고 하면 피곤해. 대충 해도 티 안 나."

"티가 왜 안 나? 네가 대충 하는 순간부터 티가 팍팍 난다고!"

부솝은 랩톱 화면에 코를 박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 순간, 그의 뒤편에 놓여 있던 커피잔이 흔들리더니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깨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진한 커피가 마루에 흥건하게 번졌다.

"악!" 부솝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펜이 쥐어져 있었다. 무심코 휘두른 펜 끝이 컵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풍떨이는 벌떡 일어나 휴지를 찾아 달려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깨진 유리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치우고, 커피 얼룩을 닦아냈다. 부솝은 머쓱하게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평소 같으면 "바보같이 왜 그러냐"며 한마디 할 법도 한데, 풍떨이는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미안..." 부솝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풍떨이는 고개를 저으며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 내가 대충 치워줄게. 티 안 나게."

그 말에 부솝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항상 '대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세심한 풍떨이였다. 부솝은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풍떨이의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의 곁을 맴돌았던 이유를. 어쩌면 그 대충대충함 속에 숨겨진 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날 이후, 둘의 티격태격 로맨스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부솝은 여전히 풍떨이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그 속에는 걱정과 애정이 묻어났다. 풍떨이는 여전히 능청스럽게 받아쳤지만, 부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 빠진 풍선과 비누방울처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SNS로 공유하기
< 1 2 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