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에 대하여 - 2부 [3]

22 미식축구응원단장 | 2019-07-20 01:11:40 | 조회 : 203 | 추천 : +1


2부 이지만 1부를 먼저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르크스에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두번째 요소가 있다.

정치적차원의 문제로, 마르크스가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사회', '불확실성의 시대' 등의 저자인 갤브레이스의 표현대로그는 '뛰어난 역사가 이기도 했지만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역사'가된 인물이다. 마르크스는 20세기 역사에 있어서 예수, 석가모니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아이콘 이었다. 그래서 20세기 모든 정치적 집단은 마르크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르크스에대한 입장을 프리즘 삼아 극우에서 극좌까지의 모든 스펙트럼을 분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각각의 정치 세력은 마르크스라는 인간과 사상에 대해 저마다의 상을 구축하였고, 다른 세력들이 구축한 상에 대해서 서로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자유주의진영을포함한 범우파 진영에서 제시하는 마르크스의 상과 그에 대한 비반도 있었다. 몇가지 중요 하게 여겨야할 것들은 레젝 콜라코프스키 Leszek Kolakowski, 에릭 푀겔린 Eric Voegelin, 클로드 르포르 Claude Lefort,카를 야스퍼스 Karl Jaspers의 여러 에세이를 들 수 있다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빽빽한 논쟁이 오갔던 곳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부였다. 예수가 신인지, 인간인지, 혹은둘 다 인지에 대해 창과 칼을 휘둘러가며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이들은 이교도들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이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의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큰 힘을 발휘했던 집단은 말할 것도 없이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 주의 집단이었다. 그 압도적인 정치적 힘뿐 아니라 마르크스의문서고를 거의 독점 하다시피 했던 것이 중요한 이유 였다. 문헌학적 엄밀성에서나 정치적 객관성에서나모범적 이었던 초기의 전집 출간 시도가 편집자였던 리아자노프의 숙청으로 1930년대에 중단되었고, 그 이후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문서고는 몇나라를 떠돌면서 소련 공산당 독일 사회민주당 사회사 연구소 등으로 나누어져버렸다. 이러한 상태에서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저작들의 선별과 편집 출간은 압도적인 인적 물적 자원을가진 소련과 독일의 공산당이 주도 할 수 있게 된것이다. 이들은 19세기말과 2-세기 초에 엥겔스, 카우츠키, 베벨, 메링 등에 의해 마련된 제2인터내셔널의마르크스의 모습을 토대로 하여 대단히 전통적인 마르크스의 상을 제시하여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 버렸다.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불만을 품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미 1920년대부터 루카치와 코르시 Karl Korsch, 아마데오보르디가 Amadeo Bordiga 파네쿠크 Antonie Pannekoek 를 시작으로 대안적인 마르크스 해석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1932년의 "경제학-철학 초고"의출간은 이러한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프로이트 및 헤겔을 끌어들인 프랑크푸르트학파,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과 연결시키는 사르트르와 거기에 니체까지 덧붙인 앙리 르페브르 등에 의해 다양한 마르크스사상을 더욱 다양하게 해석하는 시도가 나타나며, 이러한 경향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후 수많은 학자와 학파가 자신의 사상을 논하게 되면서 완전히 꽃피우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마르크스 해석의 혼란을 가져오는데, 진정으로 카오스를 만든 이는 루이 알튀세르라고해야 할것이다. 문헌학적인 엄밀성은 물론 마르크스주의 내에서의 사상사 및 논쟁사에 대해서도 놀랄 만한무지로 무장하고는, 엉뚱하게도 프랑스 특유의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내걸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마르크스를이리 저리 찢어 붙이는 이른바 '독해'라고 하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페리 앤더슨이 이끄는 영국의 뉴레프트리뷰는 영어권 세계의 알튀세르식 마르크스해석을 지적인 패션으로 만들어 버렸고 영어권 세계의 지적영향력으로 인해이는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체코 슬로바이바 출신의 카렐 코지크의 "구체성의 변증법"은 지적 깊이와 독창성에도 불구하고그만큼 널리 알려지지지 못했다. 가장 놀라웠던 일은 이러한 지적이라고 불리는 알튀세르식의 방식으로 도출해내는 결론이 결국 정통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교리를 수호하고 그것을 창시한 전통적인 과학자 마르크스의 모습을 지켜 내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1844년의 초고"의 청년 마르크스와 "자본론"의 과학적 마르크스 사이에 단절이 있다는 알튀세르의 중심 주장은양쪽의 연속성을 명백히 보여주는 "강요"가 이미 1953년에 출간되어 널리 보급되었다는 점에서 허용되기 힘든 주장이다알튀세르에 대한 영국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비판은 톰슨 Edward Palmer Thompson "이론의빈곤 Poverty of Theory " 이 있지만 이는 여러 약점이 있어 이후 앤더슨 등에 의해 논박 당한다톰슨보다 더 간략하면서도 훨씬 더 강한 비판으로는 Leszek Kolakowski, "Althusser's Mars" , SocialistRegister, vol. 8, 1971. 가 있다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Cornelius Castoriadis "Les crises d'Althusse. De lalangue de bois à la langue de caoutchouc" , Libre , 1978, 4, pp.239~254. 가 있다알튀세르의 결론이 사실상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의 옹호라는 지적으로는 Harry Cleaver Jr. Reading Capital Politically Austin,Univerisy of Texas Press:1979가 있다어찌되었든 간에 사실 알튀세르에 대한 비판이 중요한 부분 아니다.

이때부터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의 마르크스 연구와 해석은 거의 누구나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마르크스라는 인물이 일생동안 보였던 다양한 정치적 사상적 이력으로 인해 그러한 자의적 해석과 내용은 마르크스의저작에서 정당화 할 수 있는 문헌적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가치론 논쟁 문제가대표적일 것이다. 최근의 화폐론 논쟁도 들 수 있는데 마르크스는 상품화폐론자인가 신용화폐론자인가 하는문제이다. 양쪽 모두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자신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는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혼란 상태로 전락하고말았다. 중세 유럽의 모든 철학자가 다 성서를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폈듯이, 20세기 말엽의 마르크스는 누구나 원하는 이야기를 펼쳐 내면서 상대의 머리통을 때리는 만인의 몽둥이가 되고말았다.

앞에서 설명한 이유에서 마르크스에 대해 총체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이는 세계적으로 거의 찾을 수 없게되었다. 그러니 어떤 이 들은 자신이 원하는 마르크스를 마음대로 떠들어 댔다. 혹시나 반론이나 비판이 들어오면 다음의 몇가지 패턴만 기억하여 휘두르면 되다. 당파적 계급적 혁명적 관점이 부족하다.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마르크스도 자본론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있다. 그러다 정말 강적을 만난 경우에는 마르크스가 "나는마루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며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르크스도, 마르크스 주의도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존재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마르크스도 마르크스주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뿐.

이글은 여력이 된다면 4부나5부에서 끝날것입니다. 또한 이글의 표현들은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Gareth Stedman Jones)의 Karl Marx: Greatnessand Illusion의 한국어 번역판 서문에서 인용되었음을 밝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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