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스물셋. 나는 단 한번도 크리스마스를 이성과 보내본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크리스마스날 이성과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던것같다
올해역시 별반 다르지않았다. 나보다 못났으면 못났지 잘나지않은 부롤친구 5명이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따뜻해보자고 출사표를 던졌다.
'에휴 병신들.. 개고생하지말고 집이나 있어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직 정신못차린 내친구들에게 나는 일침을 가하고 기어코 25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순조로운 하루였다. 12시쯤 기상해서 크리스마스답지않은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사람그림자 하나없는 거리로 나와 라면과 과자등등을 사고, 한산한 거리를 지키고있는 비둘기에게 꼬깔콘을 던져주며
황혼의 (설명충 :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또는 그때의 어스름한 빛.) 거리에서 사막잡신의 탄생일따위에 미쳐있는 우민들과는
클라스가 다름을 입증하고있었다.
과자를 까처먹으며 응팔본방 시간을 기다리고 나에게 묵비권을 행사하던 핸드폰이 드디어 입을열었다
'까톡'
'야 ㅄ아 우리 헌팅성공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즉시 환복하고 어디로가야하오를 외쳤다
나도 우민들과 다를게없구나..
친구들 5명의 반응은 제각각이였다
'야 홍대야 빨리와 '
' 아 ㅅㅂ 꺼져 오지마 안그래도 여자수 적다고'
'홍대 xx포차니까 빨튀어와라'
'저새끼오면 여자 도망감'
나는 그 순간 성비는 5:3이며 2명은 여자의 선택을 받지못한 불쌍한 놈들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홍대는 카오스 그자체였다 수컷들의 이산화탄소가 내 후각을 매우 불쾌하게 찌르고있었다.
친구들이 말해준 홍대 술집에 다와가니 줄이 말도못하게 길었다
그 사이를 유유히 뚫고 마치 미리 예약되있는 vip 손님인 마냥 줄서있는 놈들의 시선을 즐기며 당차게 입장했다.
'야 여기야여기!!'
일제히 8명의 시선이 쏠린다. 빠르게 여자 3명의 표정을 캐치한다.
표정이 개썩었다
내 등장만으로도 술자리의 템포가 2단계는 내려갔음이 느껴졌다. 술집의 히터떄문이였을까, 식은땀이 줄줄 나길 시작했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버틴 술자리는 슬슬 파토화 되고있었다. 나를 포함한 여자의 선택을 받지못한 3명은 어서 끝나길 빌었고
다른 3명은 이분들이 집가기전에 어떻게든 2차를 살려야한다를 되뇌이고있었다.
그래도 우린 인간으로서 양심은 있는 새끼들이라
'야 우린 넘늦었다 집에서 부르네 먼저 가볼게 !' (저녁 9시였음)
우정을 과시하며 자리를 비워줬다.. 이게 뭘 뜻하는 지는 모두 알 것이다.
이미 이시간이면 짝찾을 놈들은 다찾았고, 더이상 술집에 입장하기도 너무나 힘든 시간이다.
다시 그 긴 줄을 뚫고 1시간을 기다린다? 그대로 산타기다리는 루돌프가 되기 십상이다
패배자의 몰골로 술집을 나온 우리 셋은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며 위로를 했다
'야 왼쪽 여자애 면상봤냐 ㅋㅋㅋㅋㅋ'
'ㅇㅇ ㄹㅇ ㅋㅋㅋㅋ 무라딘인줄 ㅋㅋㅋㅋ'
'야 가운데는 더심해 ㅋㅋㅋㅋ '
우린 동네로 돌아와서 한산한 거리에서 맥주와 소주등등을 사고 진솔하게 대화했다
그중 한명은 눈물을 흘리고있었는데, 왜 우냐고 물어보면 날이너무 추워 눈물이 난다고했다.
우리 셋은 너무 추워진 날씨탓에 붉어진 눈시울을 닦으며 크리스마스 종료 10분전에 헤어졌다.
크리스마스 종료 10분을 남기고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남들은 그렇게 쉬운 만남이 나는 도대체 왜...이렇게 어려운걸까
평생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는 그 기쁨을 모른채 죽어가진않을까?
짚신도 짝이있다는데, 나는 짚신벌레인가보다
그 순간 하늘에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하... 예쁘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마치 나만을 위해 내리는 것같은 이 눈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순간 어렸을적 아무 의미없이 읽어내렸던 소설 어린왕자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이 뭔지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일? 밥먹는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건 정말 어려운거란다."
아 그랬구나.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