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03-06 23:39:32 | 조회 : 11008 | 추천 : +20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류가 출현한지
어언 300만년...
인류는 다른 종과 다른 생물들보다
가혹한 환경과 자연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요건에도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월등히 발단한 두뇌
그리고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서
문명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많은 문명들이 세계 곳곳에
꽃피워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문명의 발전은
세계적인 문화 유산을 남겼는데
이러한 문화 유산 중에서도
不可思議 - 불가사의
"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는 "
" Wonders"
즉 주위에서 찾아볼 수 없기에
통상적인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규모나 크기의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세계의 몇몇 문명은 만들었다.
1. 이집트 기자의 쿠푸 왕 피라미드
- 4500년 전에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 1311년 링컨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3,800년간 가장 높은 건축물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인
쿠푸가 10만명을 동원해
20년을 걸쳐 완성했다.
이 피라미드는
멀리서 보면 감이 안오겠지만
높이가 147m 이고
밑변의 길이가 230m 이고
꼭대기에는 금이 칠해져 있었다.
이 돌에 대해 얘기하자면
돌의 무게는 평균 2.5t 이고
피라미드에 총 230만개
즉, 5900만t 이 쓰였다
그리고
피라미드에 대해 오해가 있는데 ( 다들 아시겠지만..)
피라미드를 지은 사람은
노예가 아니라
임금 노동자였다.
옛날 이집트에서도
파업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나일강이 범람하여
농사를 짓지 못할때
파라오는 이들을 피라미드를
지을 때 이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와
4500년 전에 지어진것이 매우 견고하고
돌의 모서리는 정확한 90도를 이룬다
바퀴의 개념이 없던 시대였고
동서남북이 거의 일치하고
우리 기술 수준에서 돈과 행정적 지원만 있으면 이런 피라미드 건설은 식은죽 먹기일까?
2.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기원전 435년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들었고
하늘의 신 제우스를 본뜬 것이야
본체는 삼나무로 만들어졌고
표면은 상아로 덮었어
항상 건조해지지 않도록 올리브유를 발랐고
권좌는 금, 상아,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어
오른쪽에는 승리의 여신인 니케
왼쪽에는 지팡이를 든 손에 독수리
가 있었대
제우스 상은 착시현상을 고려하여
기둥을 정면에서보면
기둥이 좁아지게 되는 형식으로 지었대
그래서
제우스 상은 입구에 들어 섰을때 부터
느낌이 왔대
거상 받침의 넓이는 6.5m 높이는 1m
거상의 높이는 13m 여서
현대 건물 4층 높이야
이 거상이 완성이 되자
신전의 천장에 거의 찰 정도의 크기였대
그리스의 역사가, 지리학자인 스트라본이
제우스 상을 보고 이렇게 말했대
스트라본 : 만약 제우스 상이 서있다면 지붕을 뚫어버렸을 것이다.
하고 경외감을 느꼇대
기원전 2세기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정복했을때
로마의 장군도 제우스 상을 구경하면서
신들에게 강한 경외심을 느꼇대
하지만 제우스 상이 올림피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지고
불타서 없어졌대
3. 바빌론의 공중정원
공중정원 이라는 말은
공중에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흡사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이 보여서
공중정원이라 한거야
기원전 660년,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왕비 아뮈티스가 사막으로
이루어진 바빌론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서
바빌론으로 오는 걸 싫어했어
그래서
아내를 위해 사막 한가운데에
공중정원을 지었지
공중정원 안에 25m, 5단 계단으로 된 테라스에
흙을 묻은 다음 물을 끌어올려
아래로 흘려 보내는 식으로
물을 공급하여 나무, 풀, 꽃음 심었고
가장 윗단의 넓이는 60m² 로 추정되.
- 그 원리를 보여주는 사진
그런데 신기한 점은
그 당시 어떻게 그렇게 대량의 물을
끌어올려 공급했다는 점이야
하지만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고해.
4. 로도스의 거상
기원전 407년
그리스의 로도스라는 섬은
도시국가연합의 수도이자
동맹국과 함께 무역의 중심지 였다.
기원전 305년
마케도니아의 데메트리오스 1세가
로도스를 포위공격을 하였다.
하지만
로도스는 마케도니아 공세를 막아내고
포위군이 남기고 간 장비를 처분해
그리스의 조각가 카레스는
기원전 304년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의
36m 청동상을
기원전 292년 12년에 걸쳐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로도스의 거상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던
양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별났다.
거상은 56년 동안 서있었으나
기원전 224년
지진이 일어나 무너지게 되서
부서진 조각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관광 명물이 됬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거상 재건 비용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거상은
부서진 상태로 놔뒀다.
부서진 거상을 본 대 플리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 플리니우스 :
" 양팔로 청동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이가 드물었고, 팔다리가 부러지자 안쪽에서 입을 벌린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
하지만
654년
칼리프 무아위야 1세가 로도스를 침공하여
부서진 거상의 파편들을 해체하여
시리아 유대인의 상인에게
고철로 팔아서 거상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 때 청동조각을 운반하는데만 낙타 900마리 이상이 필요했다고 전해진다.
5. 마우솔로스의 영묘
- 쿠푸 왕의 피라미드를 제외하면 당시대의 최대 규모의 무덤건축물
기원전 353년
소아시아에있는
페르시아 제국령 카리아의 통치자인
마우솔로스의 영묘 공사를
마우솔로스가 추진하였으나
완공되기 전에 죽고
그의 아내이자 누이인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그녀도 죽게된 후
기원전 350년 후반 쯤
완공되었다.
이 거대 규모의
마우솔로스의 영묘에는
할리카르나소스의 통치자인
마우솔레스와
그의 아내이자 누이인
아르테미시아 2세가 안치되어있다.
이 무덤은
건축가인 피티우스
4명의 뛰어난 그리스 예술가
스코파스 - 브리악시스 - 레오카레스 - 티모테오스
등이 작품을 맡았다.
그리고
이 마우솔로스의 영묘의 특징은
동서양 문화의 합체인
헬레니즘 영향을 받았고
거의 정사각형으로
둘레가 125m , 36개의 기둥이 둘러싸고
24단의 계단식 피라미드 위로 꼭대기엔
대리석으로 만든
4두마차가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기원전 34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도시가 함락되었을때도 온건했고
기원전 62년
해적의 공격에도 무사했다
16세기라는 긴 시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12세기 ~ 15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고
1409년
로도스의 성 요한 기사단이 왔을 땐
이미 폐허 였고
1494년
십자군의 보드룸 요새를 지을때
마우솔로스의 영묘의 석제를 사용했다.
이로써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완전히 파괴됬지만
몇몇의 파편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위치해있다.
6.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 기원전 3세기 파로스 섬에 세워진 거대한 등대
- 파로스 ( 그리스 말로 등대 )의 어원이 된 건축물
파로스 섬은
알렉산드리아에 면한 작은 섬이다.
파로스 섬은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km정도의 제방으로 연결 되어있고
이곳의 끝에는 파로스 등대가 있었다.
기원전 280년경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다.
크니도스의 소스트라투스라는
건축가에 의해
건설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 2세대에 이르러
기원전 250년에
완공되었다.
파로스 등대는 하얀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높이가 약 130m, 3개의 층으로 되어있다.
맨 아랫부분은 정사각형의 거대한 성채
중간 부분은 팔각형
맨 윗부분의 꼭대기엔 여신 이시스의 조각상이 있었다.
그리고 빛이 나왔는데
불빛은 43km 밖에서도 보일 만큼 밝았다고 한다.
파로스 등대는 매우 견고해서
1183년 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주바일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796년 꼭대기 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파괴되었고
1303년과 1323년에 발생한
지진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1325년 이곳을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가 이븐 바투타 :
" 등대의 한쪽 벽은 이미 무너져버렸다. 문안에는 등대지기가 앉을 자리가 하나 있고 등대 내부에는 방이 꽤 많다. "
1349년
이븐 바투타는 다시 방문했지만
파로스 등대는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다.
1480년
이집트의 술탄 카이타바이가
등대의 잔해로
카이타바이 요새를 만들면서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7. 아르테미스 신전
소아시아의 에페소스에
세워졌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친 신전이다.
1. 첫번째 신전
옛날 이곳은 운석이 떨어졌던 장소여서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다,
청동기 시대에
원래는 아마존 족의 신앙을 위해
지어졌는데
기원전 7세기에
첫 번째 신전은 홍수로
파괴되었다.
2. 두번째 신전
기원전 550년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명에 의해
증축하여서
그리스의 건축가 케르시피론이
설계하였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목록을 작성한
마케도니아의 장군 안티파트로스는
신전을 보고 이렇게 기록했다.
안티파트로스 :
" 바빌론의 성벽, 제우스의 신상, 공중정원, 수많은 노동력으로 지은 피라미드와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 신전을 보았을 때,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빛을 잃었다. "
하지만
그리스의 또라이 방화범인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로 파괴되었다,
3. 세번쨰 신전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지시로
세번째로 다시 세워졌으나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완공되었다,
규모는 제일 컷고
길이는 137m, 너비 69m, 높이 18m, 127개의 기둥이 있었다.
하지만
268년
고트족의 약탈로 파괴되고
신전의 석재 일부는
다른 건물의 건축에 사용되었다.
소피아의 대성당의 기둥과
콘스탄티노플의 여러 신전과 석상으로
재활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펨코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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