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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넘어 첫연애한 모태솔로 이야기 [5]

중장 박근혜대통령 | 23-03-03 06:25:44 | 조회 : 1187 | 추천 : +2


으로 건강한 사람이 해야 한다 - 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려면 연애를... 의 악순환 고리가 머릿속에서 맴돌아 자꾸 비참해지기만 했다.

 상사에게선 너같은 새끼 처음본다, 내 보기에 니는 바보는 아닌데 자꾸 딴생각을 한다, 뭔 사정이 있는거냐, 니 얘기를 한번 들어나 보자 같은 소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 나 쓸모없다. 근데 뭐 어쩌라고. 때되면 뒤지든 나가든 짤리든 알아서 할테니 신경 끄쇼.

 

 결국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오고 이제 뭐하고 사나~ 술만 주구장창 퍼마시다 한달정도 지났을까, 어쩌다보니 여자 한명을 소개받게 되었다. (이것도 사연이 웃기다.)

혹시나 싶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지푸라기 한가닥이 이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소개를 받는게 맞는걸까?

잘 될수도 있지만, 잘 될까봐 걱정됐다. 또다시 잃어버릴 뭔가를 가지게 된다는게 무서웠다.

결국 잘되고 싶다 기대 반, 잘되면 그다음은 어떡하지 걱정 반으로 번호를 받았다.

그래도 여자 손 한번 못잡아보고 죽기는 싫었나보다. 첫 연락부터 만남, 애프터...정말 최선을 다했다. 백수새끼가 하루에 서너시간씩 자며 데이트코스를 짜고, 모쏠티안나게 카톡하는 법을 찾아보고, mbti도 공부하고, 옷을 사고, 찐따같던 지난날을 복기하고 인터넷에 아싸,연애고자 특징을 뒤져가며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렇게 다섯번째 만나던 날 펍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연기하면서) 고백했고, 나한테도 여자친구라는게 생겼다.

여자친구는 아이같은 사람이었다. 애교도 많고 하고싶은 것도 많고 이쁨받는 것도 좋아한다. 조심스럽게 자기도 커플앱을 해보고 싶다고 할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20대 중반즈음부턴 너무 늦었다며 씁쓸하게 포기했던 'puppy love' 라는 걸 이제야 나도 해본다.

 

신기하다.

길을 걷다 가고싶은 식당이 있으면 당연히 같이 가줄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늘 부럽게 쳐다보기만 했던 커플링이 내 손에 끼워져 있다는게 신기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내 품을 파고드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평생 미워하기만 했던 내가 누군가와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나도 양쪽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가는 미소를 지을수 있었다는 게, 내 약점을 끄집어내도 싫지 않은 사람이 생겼다는게, 누군가 내 문제점을 말해도 고깝지 않게 들을 수 있다는 게, 힘들었던 날들을 술집에서 안주삼아 털어놓는게 아니라 공원에서 손을 맞잡고 들어줄 사람이 생기고 나 역시 누군가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제 나한테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고, 30년 넘게 살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일을 다시 시작했다. 전 회사보다는 작지만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다. 조만간 일이 익숙해지면 자격증 공부도 하려고 한다.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리고 달마다 제철음식을 보내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뭘 보내도 족발이 최고라길래 족발 대짜를 시켜드렸다. 평생 바빠서 꾸미지도 못했던 어머니에게 원피스를 사드렸다. 저번달엔 여친따라 가계부를 적기 시작했고 늦었지만 적금도 두개 들었다. 어제는 연금저축을 만들었다. 멈춰있던 주택청약에 돈을 넣었다.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고 싶어졌다.

 

기대되는 내일이 있다는 것 만으로 매일이 행복하다.

내가 한참 괴로워할 때,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른다'.

이제보니 네가 바로 그 구름이었나보다.

나에게 너는 첫번째 여자다. 내 마지막 여자도 네가 될 수 있을까.

 

 

 

 

 

긴글 읽어줘서 고맙다. 아직 연애한지 1년도 안된 응애커플 와붕이지만 요즘 구질구질하던 인생에 꽃이 펴서 누구라도 붙잡고 종일 얘기하고 싶은데, 새벽당직 서느라 갬성터진 참에 이렇게 대나무숲처럼 익명으로 내얘기 해봤어

모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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