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 직후의 독일 [4]

이병 patamon | 25-01-20 11:28:58 | 조회 : 940 | 추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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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

베를린에서 가장 성행하던 대로인 운터 덴 린덴에 있는 호화로운 카이저호프 호텔은 전쟁의 마지막 주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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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

전쟁이 끝나기 불과 며칠 전인 1945년 4월 29일, 미군 수송차 한 대가 마리엔플라츠와 심하게 파손된 구시가지 홀을 지나 뮌헨의 중심부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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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

미군이 1945년 뷔르거브뢰켈러 앞에서 민간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1923년 11월 아돌프 히틀러가 악명 높은 맥주홀 푸슈를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1939년 11월 8일 게오르크 엘서 등이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고위 지도자들에 대한 정교한 암살 시도를 계획하고 실행한 곳도 바로 이 건물이었다. 뷔르헤르브뢰켈러는 1979년에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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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

뮌헨은 나치의 전통적인 권력 기반이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는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다. 사진속 프라우엔키르슈의 양파 돔 타워가 민간인들이 잔해 속을 줄을 지어 지나가는 배경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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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

쾰른의 철도역은 미국 제8공군과 영국 공군의 전략적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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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

함부르크는 1945년 5월 3일 도시의 방어군이 항복하는 날에 사진이 찍혔다. 항구 도시는 황폐화되었고, 거의 완전히 인적이 끊겼다. 여기 보이는 것은 폐허가 된 부두와 철도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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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

함부르크는 큰 피해를 입었다. 세인트 캐서린 교회는 공습 이후 서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였다. 1950년에서 1957년 사이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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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

도시의 16세기 성 바르톨로뮤 대성당의 검게 그을린 폐허는 1945년 거의 평평해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중심부에 취약한 상태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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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

전쟁의 마지막 날에 최후의 거리 전투를 위해 파견된 군인들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손상된 거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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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

함부르크의 중심부는 파괴되었다. 1943년 7월 23일 연합군의 폭격으로 43,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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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

나치당은 이 도시를 거대한 나치당 집회 장소로 선택했다. 1945년 4월 도시가 함락된 후, 미국 제7군은 카메라를 향해 미국 국기를 흔들기 위해 루이트폴다레나의 다이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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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

대성당 첨탑 중 하나에서 바라본 풍경은 연합군의 쾰른 폭격의 정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북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교회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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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엘 -

독일제 U보트의 어뢰함들은 연합의 배들을 상대로 사용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고, 1945년 4월 쓸모없는 잔해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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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살츠베르크 -

미군들이 시골 휴양지의 결정적인 디자인의 특징인 베르그호프의 거대한 그림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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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

쾰른 대성당은 기적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았지만, 주변의 많은 도시 건물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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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 항공대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25,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완전히 파괴된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시청 타워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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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

한때 난공불락이었던 총통 벙커는 1947년 철거된 후 폐허가 되었다. 히틀러는 1945년 1월 16일 이곳에 거처를 마련했고, 그곳은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마지막 주까지 나치 정권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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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엘 -

독일제 U보트 펜과 건식 항구 시설이 대상이었다. 연합군의 항해사들이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내는 데 성공하면서 킬은 "독일 해군의 무덤"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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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

슈투트가르트는 전쟁 기간 동안 자동차 제조의 중요한 중심지였으며, 폭스바겐과 다임러 모두 도시에 본사를 두었다. 1944년까지 도심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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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

폐허가 된 국회의사당. 베를린 공방전 당시 붉은 군대의 상징적인 목표였다. 오늘날, 이곳은 독일 연방의회의 소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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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

민간인들이 폭격으로 파괴된 뉘른베르크 중심부에서 연합군과 어울리고 있다. 멀리에는 중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쌍둥이 첨탑이 있다. 성 로렌츠 교회는 여전히 서 있으며, 오른쪽에는 돌무더기로 둘러싸인 카이저 빌헬름 1세의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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