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이병 팩성 | 20-09-01 18:32:43 | 조회 : 799 | 추천 : +2


다른 책들이 잘 안 읽혀서 심심풀이 삼아 읽은 나츠메 소세키의 도련님이다. 분량도 채 2백 페이지가 되지 않고 내용이나 문장도 딱히 복잡한 편이 아니라 설렁 설렁 읽었는데도 2시간도 안 걸렸다. 


내용은 주인공이 시골의 중학교에 수학 교사로 재직하는 약 1달 동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것이다. 이 소설이 1906년에 쓰여진 것을 보고 놀랐다. 초반에 주인공이 자기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독백이나 주변 인물들의 언행을 두고 생각하는 내용이 (만약 그것이 현실 상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시) 당장 오늘의 기준이라고 해도 꽤나 선호받지 못할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도 훨씬 집단을 중시한 당시의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내용을 이토록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가 놀랍다. 물론 저자가 그 시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영문학자이긴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10년 뒤에 나온 무정이 상당히 계몽주의적이였음을 상기해보니 저자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다 싶었다.


모든 내용이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시대적 내용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만큼 주인공의 인물상에 이 소설의 핵심이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주인공은 솔직히 말해 철이 없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주인공은 소설의 첫문장이 얘기하는 대로 앞뒤생각하지 않고 욱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유모가 아픈 와중에 구구절절 그리움과 걱정스러움을 토하고 타지에서의 일들에 대한 답장을 바란다고 장문의 편지를 보내도 언젠가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학교에 숙직 교사가 비어있었음을 불평했으면서 정작 자신이 숙직을 맡자 온천에서 휴식을 취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교장에게도 되려 당당히 말하는 뻔뻔함도 가지는 사람이다. 동료 수학교사에게 빙수를 얻어먹은 푼돈을 어떻게든 돌려주려는 것이나 시골사람들과 학생들에게 도쿄 토박이로써 지지 않겠다는 부심을 부릴 때의 유치함은 귀여울 정도다. 그러나 그러한 주인공의 철없음에는 어떠한 비겁함도 비열함도 찾아 볼 수 없다.


사실 주인공은 상당히 고리타분한 원리원칙의 신봉자다. 우리가 흔히들 얘기하는 사회생활에서의 융통성따위는 밥 말아먹은 지 오래다. 자신이 아는 원칙 선에서 언행하고 다른 사람들의 언행 역시 그러한 원칙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주인공만큼 매사에 솔직한 인물은 드물다. 주인공의 이러한 성정이 딱히 그에게 도움이 되는 장면은 보기 힘들다. 주인공의 우직한 솔직함에는 어떠한 기교도 없기에 단지 그것만으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결말이 주인공이 겪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라 보기는 힘들 것이다. 


위와 같은 주인공의 인물상을 저자가 그려낸 까닭은 뭘까. 저자가 이상주의적인 바보가 아닌 이상 주인공과 같은 삶을 현실에서 지켜나가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이 지닌 그 철없는 솔직함이 우리로 하여금 타락의 길로 향하지 않게끔하는 이정표라 여겨서이지 않을까. 혹은 저자가 평소에 갖고 있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언행들을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소세키의 수필을 생각해보자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평점 5점 만점의 4.8점

이유; 딱히 안 좋다고 평할 게 없음. 다만 사람에 따라 주인공이 너무 고집불통 천둥벌거숭이같아 보여 별로일수 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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