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1]

이병 pappy | 18-07-25 23:01:26 | 조회 : 791 | 추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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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하느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로 다가서며,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명하려 했다. 

 

나는 하느님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화제를 바꾸려고, 왜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화가 나서,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한편이라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몽 피스!"하고,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툭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버렸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진 존재다. 세상엔 특권을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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