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맙시다 | 25-10-01 05:31:45 | 조회 : 201 | 추천 : -
한국역사연구회 학술회의… “발해와 당, 신라 완충지대 크게 형성”
영토를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고구려·백제·신라 등 고대 국가들의 국경선은 ‘목책’이나 ‘성벽’ 같은 것을 흔히 떠올린다. 교과서에도 나라별로 색을 달리해 구분하면서 시기별로 달라진 영토의 넓이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은 영토를 하나의 ‘선’으로 인식하는 오늘날의 상식을 기반으로 한 상상일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군은 390년대에 한강하류-서해안 일대 및 북한강 수계를 통해 백제 도성까지 진격했으나 반격을 받고 다시 임진강 유역으로 퇴각했다. 한강 하류와 서해안 일대는 다시 백제 영역으로 편입되었으나 이는 완벽하지 못했다. 여 교수는 “ ‘광개토왕릉비’는 정복의 최대 범위를 기술한 것이지만 백제 또한 종래 신성시했던 횡악(북한산·도봉산) 일대에서 더 이상 어렵(왕의 사냥)이나 기우제 등을 거행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백제는 자신들의 중심부였던 한강 북쪽지역이 ‘변경’으로 변모함에 따라 도성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을 실제보다 위쪽에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국의 국경은 임진강과 한강의 분수령 지대에서 넓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6세기 후반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했을 당시 고구려와의 경계도 이와 비슷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박성현 연구원은 “이 시기 양국의 경계는 북한산 줄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양국의 최전방 거점은 임진강 북안과 한강 남안에 두어진 것으로 보이며 임진강과 한강 사이는 일종의 완충지대로 기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자연지형이 느슨한 경계를 짓기도 했지만 6세기 초반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는 단순히 자연경계를 넘으면 상대국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최전방 거점과 관문을 통해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윤 | 25.10.12 | 조회 : 478 | 추천 : +1
청담동백호 | 25.10.11 | 조회 : 727 | 추천 : +1
청담동백호 | 25.10.11 | 조회 : 686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11 | 조회 : 752 | 추천 : -
뚱초단 | 25.10.10 | 조회 : 387 | 추천 : -
뚱초단 | 25.10.10 | 조회 : 286 | 추천 : -
뚱초단 | 25.10.10 | 조회 : 295 | 추천 : -
뚱초단 | 25.10.10 | 조회 : 253 | 추천 : -
설윤 | 25.10.08 | 조회 : 431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7 | 조회 : 372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7 | 조회 : 421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7 | 조회 : 371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5 | 조회 : 446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5 | 조회 : 474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5 | 조회 : 397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5 | 조회 : 467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4 | 조회 : 535 | 추천 : +1
청담동백호 | 25.10.04 | 조회 : 370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4 | 조회 : 347 | 추천 : -
청담동백호 | 25.10.03 | 조회 : 300 | 추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