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이방인 독후감 1편 [4]

5 가람휘 | 2020-03-15 16:47:43 | 조회 : 310 | 추천 : +1


소설에서는 뫼르소를 인륜을 저버린 쓰레기처럼 묘사했지만, 의외로 뫼르소는 매우 흔한 인물이다. 어머니와 취미를 공유하지 않아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달려와서 피곤하고 햇빛이 내리 쫴서, 장례식에서 슬퍼하기보단 피곤해하고 말을 줄이며, 베란다에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며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친구와 같이 있기에 충동적으로 트럭을 쫓아 달리고, 엄마가 죽은 지 하루 만에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본다. 그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파리로의 전근을 거부한다. 뫼르소를 관통하는 것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소확행을 추구하고 그 이외의 것에는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그의 친구들도 표준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고 자신의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살라미노는 개를 늘 후들겨 패지만, 그 개를 아끼는 사람이다. 레몽은 자기 동거인이 김치녀 짓을 함에도 받아들이지만, 자신에게 모욕을 주려하자 동거인을 처단한다. 그의 연인인 마리는 천진난만한 여성으로 다른 사회 문제보다는 그의 사랑을 얻고자 노력한다.

 

그러다 그러한 일상에 종말이 찾아온다. 그 종말은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과 강렬한 햇빛이 뫼르소의 이성적인 판단을 흐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연히 갖고 있던 총으로 우연히 마주친 아랍인을 총으로 쏴죽인다. 첫 발은 정당방위였지만, 어쩐지 그는 추가적으로 4발의 총알을 발사한다. 4발의 총알에 대해 예심 판사가 묻지만 그는 4발의 총알을 더 쏜 이유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정말로 자신이 왜 더 쏘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햇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를 사형으로 몰고간 것은 우연에 따른 불운이었다. 그가 말을 아끼는 성격을 가진 것도 우연이었는데, 그 우연은 향후 재판에서 매우 크나큰 불운으로 작용한다. 거기다 장례식장이 너무 멀어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육체적 상태가 아니었다는 우연도 불운으로 작용한다. 거기다 여자친구인 마리가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성격이라는 우연도 크나큰 불운으로 작용한다. 셀레스트가 조리있게 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우연도 불운으로 작용한다.

 

삶에서 지속적으로 걸쳐 나타나는 관습, 성격, 이웃 등 모든 우연들은 때로 불운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개인은 우연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자기계발서도 지금처럼 과학적이지 않았을 그 때 시절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개인은 사회적 환경에 순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결국 뫼르소는 간점 경험이 아닌 직접 경험으로 우연을 거스르는 능력을 얻게 된다. 뫼르소는 지금, 여기서 발생하는 삶의 부조리에 대해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는 삶의 부조리에 대해 사제처럼 부조리에 순응하고 부조리를 외면하며 종교에 천착하지 않고, 삶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희망을 비워냄으로서, 행복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그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면서 삶의 부조리를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희망을 비워냄으로서 행복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는 것은, 허무주의로의 귀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희망을 비워내는 것은, 과도한 기대감을 가지고 현실을 장밋빛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그에서부터 어떻게 나아갈지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부조리한 현존에서 행복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아랍인이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소외되어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알제리에서 중요한 주체는 아랍인이 아닌 프랑스인이었다. 카뮈가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역사를 공유했기에 그런 것이지만, 하필 범죄를 저지른 주체를 아랍인으로 설정한 것은 그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식민지배를 겪었던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현존의 부조리에는 동감할 수 있어도 그의 식민지배에 관한 관념에는 동감이 아니라 공감조차 내어주기 어렵다. 어느 누구라도 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아랍인이 바라본 현존의 부조리는 프랑스인에게 닥친 현존의 부조리와는 다른 층위일 것이다. 세계에 닥친 현존의 부조리는 무엇일까, 한국인에게 닥친 현존의 부조리는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나에게 닥친 부조리는 무엇일까 고민하고 나는 그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면, 이 소설의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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