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8 나의 1960년대, 야마모토 요시타카 [2]

14 팩성 | 2020-07-28 01:29:35 | 조회 : 186 | 추천 : +2



오에 겐자부로 선생의 개인적인 체험을 읽고 이어서 만엔원년의 풋볼을 읽기 전에 해당 소설이 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한다는 얘길 접했다. 아무래도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으면 좀 더 스무스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빌려 읽었다. 

먼저 저자의 경력이 특이하다. 1960년에 도쿄대 물리학부에 입학한 저자는 신입생때부터 60년 안보투쟁에 참여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도쿄대 베트남반전회의 활동과 도쿄대 투쟁을 이끌었고 도쿄대 전공투 의장을 맡았다. 1969년 투옥되어 다음해 출소한 저자는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재야 연구자로서 과학사 집필에 힘썼다. 국회의원이나 학계나 기업의 요직, 정치평론가 등의 양지에서 활약한 데에 비하면 그는 철저히 음지에서 자신의 철학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저자가 장장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전공투 시절을 회고한 회고록을 출간한 까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밝혀진 '원자력 마을(일본식 원전 마피아 표현)'의 실체를 전공투가 호소한 산관학협력 반대와 대학 자치, 동경제국대학 해체와 연결지어 서술한다. 

도쿄대를 포함해 메이지유신 이후 설립된 근대 대학들은 다른 무엇보다 과학기술을 중시했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의 군사적 역량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더욱 강조되었고 기상예보마저 군대가 독점하고 민간은 4년간 기상예보를 보지 못하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전쟁은 현대 과학기술의 정수이자 악덕인 원자폭탄의 위력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며 끝을 맺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과학의 차이가 승패를 갈리게 만들었다는 담론이 형성되고 과학은 전후에 보다 더 그 위상이 높아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문학과 철학, 사학 등 인문학계의 전쟁 당시 행적들은 비판받고 또 스스로 성찰의 시간을 거쳤지만 공학과 물리학, 화학 등 이공학계는 전쟁에 일조한 책임은 망각된 채 오히려 전후 일본의 산업발전을 이끈 원동력으로 칭송받았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잘못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물리학계가 베트남전 당시 주일미군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는 등 여전히 과학의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에 분개하였고 이는 그가 도쿄대의 본질이 전쟁 당시의 도쿄제국대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계기가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과학의 본질은 어디에 있냐는 물음은 전공투가 문제삼은 평화와 민주주의의 본질은 어디에 있냐는 화두와 일맥상통한다. 단지 베트남전쟁에 군대를 보내지 않으면 평화로운 것이고 의회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지만 민주적인 것인가. 베트남전쟁의 후방기지로써 일본 사회가 미국으로부터 혜택을 받았다면 그것은 일본 사회는 평화와 반대되는 길이 아닌가. 의회 내부에서의 중상모략은 민주적이고 의회 바깥에서의 저항은 반민주적인가. 저자는 자신이 한평생 몸담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청년시절을 불태운 전공투 시절을 매끄럽게 그려낸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한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여한 대가로 지금과 같은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데에 막대한 도움을 받았다. 물론 한국인들이 피를 흘려 얻은 대가다. 하지만 거기엔 한국인들의 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한쪽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한쪽의 희생을 수반하는 것일까. 또한 전공투 시절의 반체제적 투사들이 얼마 안 가 체제 유지에 힘쓰는 기득권이 되었다는 점에서 작금의 586 민주화운동 세대가 겹쳐보인다. 위선은 그런 자들을 위한 단어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저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청년 시절의 양심을 지켜온 이들에게 존경심이 든다.

소설을 편히 읽고자 읽은 책인데 되려 쓸데없는 잡념만 는 것 같다. 그래도 약간이나마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푸념만 는다.

평점은 5점 만점의 4.8
이유; 일흔이 훌쩍 넘은 투사의 진심어린 글은 때때로 진부할 지 언정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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