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전쟁의 역사를 책으로 남겼다. 특히 페리클레스의 연설(1권)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오늘날 기준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성차별은 빼고.) 그러나 이러한 고도의 '민주주의' 역시 '팽창주의'를 만나 망가지게 되는 모습을 투키디데스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길어지자 아테네는 여러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는데, 중립국 섬나라였던 멜로스에게 무조건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기도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권에는 이때의 대화가 실려있다.
아테네 사절단 : 우리가 현재 여기에 와있는 것은 무슨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약육강식의 원칙에 따르고 쌍방이 희망하는 것을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멜로스 위원단 : 아직 자유로운 상태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 예속화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의롭지 못하고 비겁한 일일 것입니다. 게다가 굴복은 곧 절망을 의미하지만, 저항 행동에는 아직 희망이 확실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테네 사절단 : 희망은 위기의 위안자입니다. 힘에 여유가 있는 자가 희망을 갖는다면 해를 입을지언정 멸망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희망에 거는 자는 꿈이 깨졌을 때 그 실체를 깨닫고서 경계하려 할 때에는 이미 희망도 사라져버리고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점괘나 예언에서만 찾으려다 파멸을 초래한 많은 이들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아테네가 펼치는 힘의 논리에 맞서. 멜로스 측은 두가지 논변을 전개한다. 첫째, 하늘이 정의의 편을 도우리라는것, 둘째, 중립국을 쳐들어오면 다른 나라들이 가만있지 않고 아테네도 참화를 당하리라는것,
멜로스 위원단 : 우리는 결백하며 불의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여러분과 같은 좋은 행운을 신들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아테네 사절단 : 신의 법은 분명히 자연의 법칙에 의해 힘센 자가 언제나 이기는것이라고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은 우리가 결정한 것도 아니고, 처음 이용하는 것도 아니며, 예로부터 존재해 영구히 이어져가는 것이며, 우리는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데 불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우리와 같은 권좌에 오르면 똑같은 행동을 취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멜로스 위원단 : 우리가 열세에 놓여 있는 힘의 측면은 맹방인 스파르타의 라케다이몬인이 보충해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익주의에 입각해 생각한 것이고,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이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즉, 멜로스를 배반하면 헬라스 도시들의 불신을 살 뿐이고, 이렇게 되면 자신의 적(아테네)를 간접적으로 돕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테네 사절단 : 원조국의 관심사는 피지원국의 호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행동이 결정적으로 우월한 힘으로 수행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습니다. 전쟁이냐 안정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는 지금, 어리석게도 공명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멜로스 위원단은 회의끝에 아테네와 싸우기로 결정한다.
멜로스 위원단 : 700년의 전통이 있는 이 나라에서 촌각이라도 자유가 사라지는 일을 우리는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까지 이 나라를 지켜준 신들의 가호와 라케다이몬의 지원을 믿고 우리는 자신들을 구원하는 데 전념할 것입니다.
결과는 멜로스의 멸망이었고 아테네의 무지막지한 보복이었다. 아테네는 사로잡은 멜로스의 성인남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부녀자들은 노예로 팔았다. 그리고 뒤에 아테네에서 1500명의 이민을 멜로스에 보내 아테네 사람 자신이 그곳에 정착했다. 그런데 바로 그 아테네 역시 오래지 않아 스파르타에게 깨지고 비슷한 일을 당하게 된다. 운명의 장난일까? 회담을 시작하며, 멜로스는 이런 말을 했다.
멜로스 위원단 : 이 문제가 여러분과도 크게 관계가 되는 것은, 여러분이 패해 심한 보복을 받을 때 여러분 자신이 다른 데에 좋은 본보기를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로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지 못하나보다. 힘의 논리를 내세우던 아테네 역시 힘으로 무너진 역사를, 투키디데스는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 세대 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힘의 논리를 말의 힘으로 반박해보려고 시도한다.